남북 비핵화 회담에 이어 북미대화가 본격화되면서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 가능성이 대두되자 정부가 속도조절을 꾀하고 있다.
대화의 물꼬가 트였지만 이것만으로 6자회담이 곧바로 재개되고 남북관계가 해빙되는 것으로 속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연이어 발신하기 시작했다.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 온 게 아니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24일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25일 외교안보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뭐가 된 것으로 보는 건 시기상조다"는 식의 후속 언급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YTN라디오 '강지원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발리 회담은 남북관계에 어떤 물꼬가 좀 트였다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남북관계의 급격한 진전을 바로 기대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북미대화를 고리로 6자회담 재개 흐름이 급진전될 가능성에 대해 "미국의 입장은 꽤 조심스럽고 까다롭다"면서 "(북미대화가) 시작되지만 급진전 가능성보다는 공방이 꽤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낮췄다.
그는 특히 "급하게 의욕적으로 하려 하면 오히려 역기능 있을 수 있다"며 "여유를 갖고 벌어지는 상황을 침착하게 보면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당국자도 "너무 발리 비핵화 회담의 성과를 과장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주문했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응 행보에는 복잡한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분명한 태도변화가 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대화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회담을 위한 회담'은 없다며 북한의 선(先) 비핵화 조치를 주문해온 정부로서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아무런 진전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일련의 대화재개 흐름이 원칙없는 대북정책의 전환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작동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정부로서는 북한에 대해 '무조건 6자회담으로 간다'는 식의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지 않고 조속한 태도변화를 압박하기 위해 속도조절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다 큰 틀에서 볼 때는 남북관계 이슈 자체가 전체 6자회담 재개 흐름에 파묻힐 경우 한국의 주도권과 상황 장악력이 악화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북미대화쪽으로 급격한 '힘의 쏠림'이 이뤄지면서 남북관계를 레버리지로 6자회담 재개과정에 관여해온 정부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국내 여론과 정치권의 기류도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천안함ㆍ연평도문제에 대해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국면전환이 가시화될 경우 국내적으로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단 국내적으로 대화국면 재개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낮추면서 향후 북미대화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런 가운데 향후 한반도정세 대응과정을 둘러싸고 6자회담 업무를 주무로 하는 외교부와 남북관계 업무를 주무로 하는 통일부 등 정부부처 사이에 미묘한 입장차가 나타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로서는 미ㆍ중의 대화재개 흐름에 보조를 맞춰 6자회담 재개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대북 접근기조에서 유연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으나 통일부는 순수 남북관계의 특성을 고려해 원칙적 대응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대북 접근에 있어 정부 부처간 일정한 역할분담을 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자칫 잘못 관리될 경우 정책신호의 혼선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