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더위가 불덩어리 같다. 여름이 고비를 지나고 있다. 가을이 오면 꺾일 것이다. 계절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시기를 잘못 알아 망가지는 사람을 흔히 본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기왕의 일을 붙잡고 있다면 때를 모르는 짓이다. 시대를 너무 앞질러도 문제다. 때의 선택이 그런 결정의 핵심이다. 지혜만이 그 때를 구별하게 한다.
전북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덫에 걸린 듯하다. 2009년 통합이후 본사유치가 줄곧 도정의 중심이었다. 압도적인 이슈로 지속됐다. 종합실천계획이 확정된 새만금사업과 함께 두개의 트랙으로 펼쳐졌다. 결과는 무산이고 실패다. 2개월이 지나도록 후유증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실패는 덫과 같다.
우리 사회는 실패를 쉽게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천재도 10개쯤 시도하다 하나를 건진다는데 하나만 실패해도 가만두지 않는다. 다들 말로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다르다. 한두 번의 실패에 대해서도 상당수가 '잘난 척하더니…'하는 반응부터 나온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걸 막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으면 누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는가.
전북은 LH문제에 너무 매몰돼 있다. 실패라는 짐이 무겁다. 전진할 수 없다. 유치실패의 원인은 이미 드러났다. 전술과 전략에서 부실했고 정치권의 응집력 역시 허술했다는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와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사과의 자리를 마련하고 도지사와 국회의원, 도의원, 시장·군수, 시·군의장단이 한꺼번에 큰절로 사죄했다.
그럼에도 사태를 비판하는 쪽은 여전히 책임론을 붙들고 있다. 사죄 자체가 형식적이고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총력전을 폈지만 결국 도민들에게 상실감과 피로감까지 안겨줬다는 차원이다. 공감이 간다. 추진측은 잘못을 확실하고 겸허하게 시인해야 한다. 그래야 또 하나의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전북이 잘 살기 위한 국면 전환에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 발굴이 절박한 과제다. '제2의 새만금'이 없다. LH의 확실한 후속대책도 기대해야 한다. 다른 지역은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정책발굴에 혈안이다. 이리 뺏기고 저리 놓치는 경우가 우려스럽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은 경계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 LH 말고는 걱정할 일이 없는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한 발 전진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과거를 끊어야만 한다. 단절의 결단 없이는 미망(迷妄)의 늪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이른바 '일꾼'들이 자책감에 젖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젠 실패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물론 때를 안다는 건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충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감정에 치우쳐 결정한 일은 잘 될 수가 없다. 냉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기로는 결코 때를 볼 수 없다. 분수에 맞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지역부흥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덫을 푸는데 우리는 지혜를 모아야 할 의무가 있다.
/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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