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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거리에서] 정자나무와 풍언이 아제

내가 살던 임실군 장산리 마을 앞 강 언덕에는 250년 쯤 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 밑에 정자를 지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정자나무라고 부른다. 정자나무를 서어나무를 심어 가꾸는 마을도 있고, 팽나무를 심어 가꾼 마을도 있고 소나무나 참나무를 심어 가꾼 마을도 있다. 마을 입구나 마을 뒤나 마을과 마을의 경계나 뒷산 고개 마루에 심어 가꾼다. 우리 동네 앞 강 언덕의 느티나무는 서춘 할아버지가 심었다고 한다. 크고 우람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 그늘 아래로 다 들어가 쉴 수 있다. 뜨거운 여름 날 점심을 먹고 동네 남자들은 모두 이 정자나무 그늘로 찾아 든다. 정자나무 밑에는 동네 사람들이 누워 쉬고 잘 수 있도록 넓적한 돌들을 주워다가 침대처럼 여기 저기 만들어 놓았다. 정자나무로 모인 사람들은 윗옷을 벗어 붙이고 앉아 장기도 두고, '꼬니(고누의 방언·땅이나 종이 위에 말밭을 그려 놓고 다투는 놀이)'도 두고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씨름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눈곱만한 풀잎을 정자나무 껍질 속에 숨겨 두고 찾기 놀이도 하고, 들 독을 드는 힘자랑도 하며 놀았다.

 

'풍언'이라는 호를 가진 아제가 있었다. 풍언이 아제는 아주 짧은 곰방대에다가 담배를 피웠는데, 한 뼘 곰방대를 물고 짚신을 만들거나 맷방석을 만들거나 망태를 만들었다. 나는 풍언이 아제가 정자나무아래서 잠을 자는 것을 보지 못했다. 풍언이 아제는 놀지 않고 늘 무슨 일인가를 했다. 풍언이 아제는 물건들을 만들면서 늘 이야기를 했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들은 잘도 했는데, 풍언이 아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자나무 밑에 자고 있던 사람들이 다 깨어나고 아이들은 어느 덧 아제의 주위를 삥 둘러싸고 이야기에 귀들 기울였다. 아제는 이야기를 끊고 맺고 힘주고 빼고 멈추는 일들을 적절하게 유지하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하고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하며 '관객'들을 가지고 놀았다. '풍언'이라는 호가 風(바람풍)에 言(말씀언)을 썼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풍언'이라는 말이 그 아제에게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호였다. 앞 산 머리에는 뭉게구름이 솟고 앞 강에서는 고기 떼들이 구름 그림자처럼 돌아다니고 정자나무에서는 와가리라는 매미들이 와그르르 와그르르 울었다가 그치고 울었다가 그치는 사이 풍언이 아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더위도 심심함도 다 사라졌다. 풍언이 아제가 만든 모든 도구는 다 예술작품이었다. 솜씨가 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아제가 만든 도구 속에는 동네의 모든 이야기가 촘촘히 엮이고 또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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