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고려대장경 연구소 주최 프로젝트로 1/4 진행
올해는 고려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1011~1087)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00년을 맞는 해다. 거란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고려인들은 현종 2년(1011) 불력(佛力)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염원으로 불경을 목판에 새겼으나, 고종 19년(1232)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소실됐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국보 32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초조대장경에 이어 국내에선 두번째로 다시 제작한 재조대장경(1236~1251)이다. 재조대장경은 현존하고 있는 목판 문화유산의 정수. 그러나 재조대장경에 비해 초조대장경은 인쇄본마저도 국·내외에 산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부터 완판본의 고장인 전주에서 초조대장경 복원에 참여하고 있는 목판서화가 안준영(54·대장경 문화학교 대표)씨를 만났다. 국내·외 흩어져 있던 초조대장경 인쇄본은 (사) 장경도량고려대장경연구소(종림 스님)를 통해 구축됐다. 안씨의 초조대장경 복원은 올해 초조대장경 발원 1000년을 기념한 '한·일 공동 초조대장경복원간행사업'으로 경북대 연구팀(남권희 교수)의 자문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씨는 고증을 통해 복원한 고려 한지에 전통 먹(墨)으로 한지를 인쇄해 초조대장경을 원형에 가장 가까운 권자본(두루마리)으로 복원하고 있다. 안씨를 필두로 한 제자들은 지난 3월 금강경·화엄경·반야바라밀다경 등 100권만 우선 복간했으나, 2014년까지 초조대장경 복원은 진행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1000년 세월을 견딘 초조대장경 인쇄본이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갖는 비결은 뭘까. 그는 한지, 먹, 삭힌 풀 등을 이유로 꼽았다. 닥나무를 100번 이상 두드려 만든 한지의 장점은 질기다는 것이다. 그는 "한지는 먹물을 잘 빨아 들이며, 보존력이 높다"고도 했다. 종이 위의 글씨는 검은빛이 잘 바래지 않는 송연묵(松煙墨)이 사용됐다. 송연묵은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인 '관솔'을 태워 나온 그을음에 아교를 섞어 만든 것. 10년씩 삭힌 풀과 숙련된 글씨 새기는 기술 등도 필요했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그가 연고가 전혀 없는 전주에 오게 된 것은 이곳이 완판본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전주는 고전 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심청전, 춘향전, 구운몽 완판본을 통해 한글을 널리 보급하는 출판문화의 탯자리. 완판본은 사투리가 많아 향토색이 짙고, 서체가 다양해 다양한 글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귀중한 사료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설립한 대장경 문화학교를 통해 전주에서 훈민정음 언해본과 용비어천가, 심청전 등과 같은 완판본 복원과 관련 전시·체험교육을, 경남 덕유산에 위치한 이산각 연구소에서는 판각기능인 양성을 해오고 있다.
그는 "전주가 출판문화의 중심지가 됐던 것은 판소리가 대중화되면서 판소리 사설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본이 만들어졌고, 질이 좋은 전주 한지를 통해 명맥이 이어져왔던 것"이라며 "전주가 이 위상을 다시 찾으려면, 소리와 한지 분야의 장인들과 함께 문화운동 차원에서 완판본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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