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사의 '창비시선'과 함께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이끌어 온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이 400호를 맞는다.
1978년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1호로 낸 '문학과지성 시인선'(이하 문지 시인선)은 현재 397호인 '눈앞에 없는 사람'(심보선 지음)까지 냈다.
내달 400호가 나오면 1호가 발간된 지 33년 만인 셈이다.
34년간 해마다 평균 11.8권의 시집이 나왔으며 국내 시집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호수를 기록하고 있다.'문지 시인선'은 1977년 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이던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김현이 주축이 돼 만든 '젊은 시인선'이 모태다.
이후 1970~80년대를 거치며 전통 서정시에서 전위적 작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과시하며 숱한 스테디셀러를 냈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김광규의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이성복의 '남해금산',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정현종의 '한 꽃송이',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등이 '문지 시인선'을 통해 독자와 만난 책들이다.
400호는 301~399호에 실린 시로 꾸미는 기념 시선집으로 발간된다.
문태준, 장석남 등이 '시인의 초상'이라는 주제에 맞게 시를 골랐으며 80여 편가량 실릴 예정이다.
100호 단위로 황토색, 청색, 초록색, 밝은 고동색으로 표지색을 바꾼 이 시리즈는 400호부터 또 다른 색으로 바뀐다.
표지에 실리는 캐리커처는 이제하 시인이 계속 그린다.
문지 시인선 400호 시대를 맞아 '문학과 사회'는 지면 좌담을 실었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시인 황인숙 이원 문태준 하재연, 문학평론가 강계숙이 좌담에 참여했다. 이원은 "문지 시인선의 상징성은 전위의 언어로 최극단의 세계를 400권이나 이루어냈다는 데 있다고 본다"며 "문지 시인선을 두고 현대성을 우위에 둔 모더니즘만 옹호한다, 리얼리즘은 잘 수용하지 않는다라는 고정관념이 있기도 하고, 같은 맥락에서 서정시보다는 관념적 세계가 우세한 시선이다라는 인식을 가진 독자도 꽤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400호를 맞는 의의를 전했다.
강계숙은 여성 시인과 관련된 부분에 주목하며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여성 시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며 "1981년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과 김혜순 시인의 '또 다른 별에서'가 나오면서 더 이상 한국문학에서 '여류 시인'이라는 말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문학평론가 백낙청, 이제하, 소설가 조경란, 변호사 강금실 등이 '나와 문지시인선'이라는 코너에서 각자 짧은 감상을 전했다.
오랫동안 창작과비평을 이끈 백낙청은 "창비가 자유를 덜 중시한다기보다 자유와 평등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인식하기에 문지와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안고 있는입장"이라며 "문학지로서의 실행이라는 면에서 창비가 못한 일을 문지가 많이 해왔음을 문지 시인선 400호 출간을 계기로 새삼 실감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 조경란은 "내 독학 시절의 문학의 선생이자 말벗, 그 시작이 문지 시집들이었다.
내게 필요한 모든 밝은 빛은 거기에 담겨 있었다"며 "시인선 첫번째 시집이나왔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고 400호가 나오는 지금 마흔세 살이 된다"고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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