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연습…구전민요부터 영화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 연주
1일 오후 12시 전주중앙초(교장 조용현) 운동장.
이 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260여 명이 일제히 단소(短簫)를 연주한다. 단소는 세로로 부는 우리나라 전통 관악기로 뒤에 한 개, 앞에 네 개 등 모두 다섯 개의 지공(구멍)이 있다.
구전 민요 '진주난봉가'에 이어 영화 음악 '첨밀밀'이 울려 퍼지자 학교 담장 너머로 관광객들이 발길을 멈추고 삼삼오오 감상한다.
운동장 한 켠에서 김재은(3학년)·정은(1학년) 두 딸을 기다리던 김정아 씨(33·전주시 경원동)는 "작은 아이가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학교에서는 떨어 소리가 잘 안 나는데, 집에서는 소리를 곧잘 낸다"며 "첫째, 셋째 토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단소를 연주하는 모습도 신기하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5분간의 '작은 연주회'를 마치고 엄마 품에 '쪼르르' 달려와 안긴 재은이에게 '단소는 어떻게 소리를 내냐'고 묻자 "아랫입술을 대고 살살 바람을 불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가을입니다. 다음 곡은 패티김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입니다. 관광객 중에서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신 분은 휴대폰 010-3684-○○○○로 메시지 남겨 주시면, 즉석에서 연주해드리겠습니다."
현서희(3학년)가 "교감 선생님이 연주한다"며 조회대 쪽으로 달음박질한다.
방금 전까지 수백 명의 '꼬마 연주단'을 지휘한 홍인표 교감(59)이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등 친숙한 가요와 영화 음악 등을 연주하자 염가은(5학년)과 민유심·이은비·한민경(이상 4학년) 등이 홍 교감 주위를 둘러싼다.
"멜로디언과 리코더,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안다"는 염가은은 악기 중에서도 단소를 첫손에 꼽았다. "전통 악기이고, 소리가 좋다"는 게 이유.
가은이는 "단소를 하니까 손이 잘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손재주가 늘었어요"라며 웃었다. 동생 염하은(1학년)은 "하나도 재미 없어요"라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지만, 언니는 "집에서 가끔 동생이랑 단소를 불면, 엄마, 아빠가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전주중앙초 전교생이 '소리 내기 어려운 악기'로 알려진 단소를 불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홍 교감이 이 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그는 지난 1998년 '유연성 단소 지도법'을 계발해 그동안 방학 기간 직무 연수 등을 활용해 도내 교사 1400여 명에게 새 지도법을 보급해 왔다.
이 학교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학년별·요일별로 아침 8시30분부터 15분씩 음악실에서 홍 교감으로부터 단소 수업을 받았고, 그해 11월 학습 발표회에선 전교생이 단소를 연주했다.
지난 4월부터는 '놀토'(노는 토요일)가 아닌 토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평소 배운 단소 실력도 뽐내고,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단소의 '청아한 소리'를 선사하고 있다.
홍 교감은 "전주중앙초가 밖으론 경기전 등 한옥마을에 둘러싸인 '전통학교'라고 내세웠지만, 실제 안에선 그렇게 부를 만한 내용이 없었다"며 "단소를 전교생에게 지도하면서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가 계발한 '유연성 단소 지도법'은 소리의 비밀을 유연성에서 찾은 게 특징. 기존 단소 지도법이 ①거울 보고 ②입술 고정하고 ③소리가 날 때까지 연습하는 식이었다면, '유연성 단소 지도법'은 악기를 내리고, 입술에 가져가는 '자연스러움'에 초점을 맞췄다.
단소를 운동기구에 비유한 그는 "배드민턴과 탁구를 할 때 기본 자세가 자연스럽지 않으면 힘이 들어가 외려 운동을 방해하듯 단소도 유연성이 해결되어야 소리가 난다"며 "운동신경이 단소 연주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소를 드는 자세만 봐도 연주를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있다"며 "여기에 눈과 손 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눈은 악보를 따라가고, 손은 중림무황태(仲林無潢汰)라는 율명(서양 음악의 계이름)을 짚는 훈련이다.
단소는 도레미파솔라시 7개 온음뿐 아니라 반음까지 12개 음을 모두 낼 수 있어서 민요·가요·재즈 등 전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유연성 단소 지도법'을 배운 교사나 학생들이 "'단소=어렵고, 신통찮은 악기'에서 '단소=쉽고, 대단한 악기'로 생각이 바뀌고, 단소를 연주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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