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성(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제92회 전국체육대회가 폐막한 12일 군산 은파유원지는 잠잠했다. 그 호숫가에서 길러낸 카누종목이 전국체전 1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특별한 분위기는 없었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찌푸린 오후였지만 산책이나 운동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부산하고, 또 다른 계절을 끌고 가는 갈바람만이 황량하게 지나쳤다.
우리나라 카누의 대들보 이순자(34∂전북체육회)가 고마웠다. 태극기와 전북의 깃발을 몸에 두르고 경기장을 돌 때마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전북이 자랑스러웠다. 해준 것도 없는데 이 나라, 우리 지역 이름을 떨쳤구나. 당신의 눈에 눈물이 맺혔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나. 벽돌보다 단단한 굳은살 손바닥을 만들기 위해 흘린 땀은 또 얼마나 될까. 곧 끊어질 듯한 긴장, 몰려오는 중압감, 그걸 용케 견디어 주었구나. 그 땀과 눈물에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호수 언저리 '전라북도 카누 전용훈련장'에서 만난 이순자는 의외로 냉소 섞인 태도였다. 웬 호들갑이냐고 뜨악해 한다. 그런 저런 고민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읽혀졌다. 이번 체전에서 주 종목인 여자일반부 K1-500m와 K4-500m 경기에서 각각 금, 은메달 1개씩을 낚아 노장의 세월을 무색케 한 선수다. 지난달 전국카누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 신기록을 냈다. 2009년엔 이란 아시안 게임 K4-1000m에서 가장 빠르게 골인하는 등 14년간 태극마크의 자존을 지켜왔다.
그런데도 그는 왜 그렇게 유쾌하지 않을까. 어설픈 현실을 드러내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트 선수가 갖출 시대소명을 토로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기가 질렸다. 열악한 훈련환경이 무작정 연장되는 걸 가냘픈 어깨에 짐을 진 채 지켜볼 따름이었다. 임시 성장 호르몬처럼 주입되는 지원체계가 제한적이어서 허망한 실제모습을 충격 없이는 차마 혀끝에 올리지 못했다.
훈련장에 세워진 무허가 철제(60여㎡)와 슬레이트 블록(130여㎡) 두 건물은 체육전북을 꿈꾸는 자들의 누추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스스로 성찰하도록 이끌었다. 지붕과 벽면 곳곳이 무너지고 망가져 하늘과 외부로 바로 연결됐다. 땅에 처박힌 출입구 문은 줄로 묶어 오갈 땐 풀고 다시 맨다. 전기시설은 아예 볼 수 없다. 비바람 몰아치는 공간은 쓸모가 없을 광경이었다. 패들(노)과 카누는 야외보관으로 코팅이 벗겨지고 뱃바닥이 갈라진다. 수년째 긴 터널을 이렇게 황망히 걸어왔을 뿐이다.
미래 불안에서 탈출할 생각으로도 선수들은 마냥 불안하다. 실업팀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든지,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선수층이 탄탄한데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괴로움의 연속이다. 비인기종목으로 해석하는 입장은 이에 대해 무어라 응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방관자적 자세가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익과 우리가 잃을 수 있는 가치의 무게를 저울질해 볼 필요가 있다. 애매한 변론으로 얼버무리고 지나쳐선 안 된다. 그때그때 쏟아내는 정책메뉴들과 운영체계의 변덕을 감당하면서 여기까지 버텨온 것이 경이롭다. 대부분 지역에 설치된 카누훈련원과 실업팀 창단이 과제다. 선수들을 잘 대접해 전북카누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게 해야 한다. 체육은 결코 진공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 최동성(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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