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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더러운 입

배병삼(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오백년 전,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살던 조식선생이 출세한 제자와 함께 저녁 밥상을 맞았다. 내내 기름진 음식을 먹던 제자는 헐한 밥과 박한 찬이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선생이 한 마디 던졌다. "자넨 음식을 등으로 먹질 못하는구먼!" 헐한 음식을 억지로 삼키려면 목울대를 울리고 등을 움찔해야 넘어가는 것을 두고, "등으로 먹는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음식은 창자를 채우기면 하면 될 뿐, 입맛에 집착하지 말라는 회초리다.

 

저녁 무렵 텔레비전을 켜면 언제나 먹을거리 타령이다. 이마엔 비질비질 땀을 흘리며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벌려 음식을 우적우적 씹는다. 또 그게 채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에 엄지손가락을 쑥 내밀고서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해가며 호들갑을 떤다. 먹는 음식을 두고 이런 추한 모습을 꼭 보여야 맛 기행이 되고, 고향 탐방이 되는 것일까 싶다.

 

50년 전 보릿고개 시절 오늘의 풍요를 헤아리지 못했듯, 또 머지않아 굶주리는 때가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 그래서 저 입들이 두려운 것이다. 문득 "음식에 탐닉하는 걸 비천하게 여기는 까닭은 고작 입의 욕망에 휘둘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던 맹자의 말이 귀에 따갑다. 먹는 입은 더러워지기 일쑤인 것이다.

 

음식을 삼키는 입보다 더 조심스런 것이 내뱉는 입이다.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사람됨이 들어있다. 하이데거의 말마따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사람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흰소리를 자주 하면 사람이 실없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으로 내뱉는 것이 모두 다 말은 아니다. 지키지 못할 말, 책임지지 못할 말, 거짓말은 '말'이 아니다. 말 속에 의미가 없고, 말 뒤에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것은 '소리'일 뿐이다. 소리를 내는 것은 짐승이다. 흰소리, 발림말, 거짓말은 새가 지저귀는 것이나 개가 짖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니까 말이 뜻을 잃고 소리로 떨어지면, 사람은 곧장 짐승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옛말에 "사람이 사람 짓 하기 어렵다"라더니 말 한마디 잘못에 짐승이 되고 마는 셈이다. 그렇다면 또 알겠다. 불교에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 '입이 저지른 악업을 씻는 진언'을 외고 나서 의식을 시작하는 까닭을. 먹을거리에 집착하는 것이야 제 한 몸의 추잡함에 그치지만, 말을 잘못 내뱉으면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말은 내뱉는 이의 사람됨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말에는 듣는 상대방이 있게 마련이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맺어서 공동체를 이뤄주는 매개체요, 공공재인 것이다. 한자어 신(信)을 세로로 쪼개면 사람(人)과 말(言)로 나눠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람의 말, 즉 사람다운 말일 때라야 신뢰가 생긴다는 뜻이다. 신뢰가 사라지면 말은 소리로 추락하고, 사회는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공자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없다면 공동체는 존재하지 못 한다"(民無信不立)라고 경고한 것이 바로 이 자리에서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유독 흑색선전이 창궐했다. 흑색선전은 오로지 상대방을 해코지하기 위해 없는 사실을 만들어 유포하는 악독한 짓이다. 의도적으로 불신을 조장하고 조직적으로 말을 파괴하는 짓이다. '흰소리'도 사람을 실없게 만들거늘 '검은소리', 흑색선전이야 말할 게 있으랴.

 

한나라당 중진의원인 김무성은 선거과정이란 난장판이라며, 안철수 교수더러 "난장판인 선거전에 기웃거리지 말고 강의나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말인즉 틀린 말은 아닌 듯하나, 곰곰 생각하면 참 무섭다. 본인을 위시한 의원들이 모두 협잡과 사기, 거짓말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난장판 출신이라는 자기고백으로 들려서다.

 

정치가가 자승자박하는 '소리'를 태연히 내뱉는 이 뻔뻔한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음식에 껄떡대는 입이야 제 한 몸을 누추하게 만들 뿐이지만, 공공재인 말을 검은색으로 오염시켜 공동체를 망가뜨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저 더러운 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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