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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과 함께 실종된 두 젊은 대원은 누구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박영석(48) 대장과 함께 실종된 강기석(33), 신동민(37) 대원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암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한 젊은 산악인들이다.

 

강 대원과 신 대원은 2009년 5월 20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6시15분) 박영석 대장과 함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남서벽과 서릉을 따라 등정했다.

 

종전에 누구도 밟은 적이 없는 이 난벽 등반로에는 '코리안 루트' 또는 '박영석 루트'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붙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넘어 서릉을 통해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것은 1982년 러시아팀 외에는 없었고 서릉 등반도 1978년 유고팀을 포함해 두 차례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험난한 길이라서 유고팀은 하산하는 과정에서 정상에 오른 대원들이 모두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박 대장은 1991년과 1993년,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첫 번째는 추락해 크게 다쳤고 두 번째는 두 대원이 다쳤고 2007년 신루트 도전때는 눈사태를 만난 두 대원이 숨지고 말았다.

 

박대장과 함께 산악사에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신 대원과 강 대원의 다음 행선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로체 남벽과 함께 '세계 3대 난벽'으로 불리는 안나푸르나 남벽이었다.

 

역시 박영석 대장과 함께 원정대를 꾸린 신 대원과 강대원이 안나푸르나 남벽에 처음 도전한 것은 작년 4월이었지만 실패로 막을 내렸다.

 

강 대원은 전진 캠프를 떠나 1캠프를 구축하러 갔으나 낙석으로 오른쪽 무릎이 10㎝가량 찢어지고 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어 카트만두로 후송됐다.

 

원정대는 5월까지 장비와 식량을 정비하고 등정을 위한 적기를 기다렸으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리는 눈과 눈사태 위험 때문에 철수하고 말았다.

 

이들 대원은 작년에 겪은 신난한 등반에 굴하지 않고 박 대장과 함께 이번에 안나푸르나 남벽을 재도전하다가 변을 당했다.

 

박영석 원정대를 후원한 노스페이스는 이번 등반이 '알파인 스타일'로 시도된다며 등반 전에 그 의미를 크게 부각했다.

 

알파인 스타일은 캠프를 점차 건설해가며 정해진 능선을 따라 오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식량과 침낭, 장비 등을 스스로 짊어지고 떠나는 자급자족 방식의 등반을 의미한다.

 

꼭대기에 오르는 결과를 중시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가 아닌 험한 길을 선택해 오르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를 지향하는 등반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신동민 대원은 185㎝가 넘는 키에 무척이나 힘이 세 '괴력의 사나이'로 불렸으며 박영석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를 남서벽으로 등정할 때도 선두에 섰다.

 

최고의 등반가로 꼽히는 박 대장은 신 대원에 대해 "8,000m 위에서 똑같은 속도로 하켄을 박으며 등반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신 대원은 아내와 세 자녀을 두고 있다.

 

강기석 대원도 그에 못지않은 끈기 덕분에 '차돌 같은 사나이'로 불리며 막내로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다.

 

한국산서회(山書會) 회원으로 활동하며 학술에도 관심을 뒀으며 등산용품 업체 직원으로 일하면서 개인 등반을 위해 휴직해 이번 등반에 나섰다.

 

그는 미혼이었다.

 

국내 산악계에서는 한국에서 산악 정신을 제대로 고취할 차세대 주자들을 잃었다는 슬픈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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