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전문병원 제도가 무리한 법 해석과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 부재 등으로 시작부터삐걱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완화 기준을 확대 적용해 수준 이하의 병원이 전문병원으로 선정됐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전문병원 제도가 병원 홍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30일 복지부가 홈페이지에 공지한 전문병원 선정기준에 따르면 병원은 전문병원으로 선정되기 위해서 질환이나 진료과목에 따라 해당 전문 분야의 전속 전문의를 4명 혹은 8명 이상 갖춰야 한다.
가령 관절질환 전문병원으로 선정되려면 8명 이상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필요하다.
유방질환 전문병원은 외과 전문의가 4명 이상이어야 하며 수지접합 전문병원은 정형외과 혹은 성형외과 전문의를 최소 8명 확보해야 한다.
다만 복지부는 8명 이상의 전문의를 확보해야 하는 분야의 경우 지역적·질환별 특수성을 고려해 최대 30% 이내(2.4명 이내)에서 조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병원으로 지정받기 위해 최소 8명의 전문의가 필요하지만, 특수한 경우 6명의 전문의만 있어도 전문병원 신청 자격을 인정해주기로 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지난 7월1일 전문병원 신청 공고 시 완화 기준 '2.4명(30%) 이내'를 '3명(37.5%) 이내'로 해석해 전속 전문의가 5명에 불과하더라도 전문병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공지했다.
결국 '전문병원 지정 및 평가 등에 관한 규칙' 제2조에서 규정한 전문인력 기준의 '30% 범위 내 완화' 조문은 '37.5%'까지 늘어나게 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2.4명이든 2.1명이든 사람을 소수점으로 계산할 수 없으니 3명으로 간주해 8명의 전문의가 필요한 분야 중 일부는 5명만 충족하더라도 전문병원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별 전문의 현황(28일 기준)을 살펴보면 복지부의 공고와 달리 '30% 범위 이내'의 완화 기준을 '최대 2명 이내'로 해석했을 때 전문병원기준에 미달하는 병원은 99개소 중 총 10여곳(10%)에 달한다.
지난 7월 신청 접수 당시 전문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면 기준 미달로 탈락했을 가능성 큰 병원들이다.
행정법을 전공한 한 법조 전문가는 "2.9명이라고 해도 '이내'라고 명시했다면 2명으로 보는 것이 판례상 맞다"면서도 "다만 행정기관이 '3명'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면 제삼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한 정책 추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병원 선정 기준이 완화될수록 더 많은 병원이 전문병원으로 선정돼 특혜를 누릴 수 있는 만큼 병원들이 복지부의 해석에 제동을 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전문병원 선정을 두고 치열한 로비전까지 전개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선정 기준을 명확하게 하지 않을 경우 전문병원 정책이 자칫 병원의 홍보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기관의 한 변호사는 "복지부의 해석이 규칙에서 정한 30% 완화범위를 넘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병원 지정은 제재가 아닌 수익적 행위로 봐야하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며 "이는 제도 시행 초기이고 전문병원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배려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문병원 선정 이후 선정 당시의 기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지 상시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별 전문의 현황에 따르면 복지부가 해석한 완화 기준을 적용했다고 해도 28일 현재 선정 기준에 미달한 전문병원은 이미 4곳에 이른다.
A병원은 관절질환 전문병원으로 지정됐지만 현재 전속된 정형외과 전문의 수는4명으로 복지부가 해석한 완화 기준(5명)을 적용해도 1명이 부족하다.
관절질환 전문병원으로 지정되기 위한 전문의 확보 조건은 정형외과 전문의 8명이다.
재활 전문병원으로 지정된 B병원 역시 4명 이상이어야 할 전문의 수는 현재 2명에 불과하다.
C안과(광주광역시 소재)와 D외과(서울 소재)는 각각 안과 전문병원, 외과 전문병원으로 지정됐지만 현재 전속된 전문의 숫자는 7명과 3명이다.
안과와 외과 전문병원은 인력 완화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전문병원으로 지정되려면 각각 8명, 4명 이상의 전문의를 둬야 한다.
C안과와 D외과는소재지가 광역시급 이상이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완화 기준 대상도 아니다.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선정된 전문병원의 의료 인력은 공고일(7월1일) 직전 분기(2011년 2분기)를 기준으로 모두 요구 조건에 부합했다"면서 "만약 일부 전문병원의 인력 기준이 당시와 달리 현재 미달 상태라면 신청 이후 병원마다 발생한일시적인 변동 때문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전문병원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도 전에 기준 미달 병원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은 곧 상시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복지부는 전문병원으로 지정된 기관에 대해 연차보고서 제출 등 모니터링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의료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전문병원이 시범적으로 운영되면서 수술 건수가 급증하고 의료사고 발생도 잦아지는 문제점이 나타났다"며 "전문병원 정책의 초점은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질을 관리하고 모니터하는 데 맞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대학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왜곡된 의료 전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병원을 선정했으며, 11월부터 전문병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의료기관은 병원을 홍보할 때 '전문'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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