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북의 문화 자치능력이 이 정도 수준인가?” 하는 안타까움이 솟았다.
그 동안 실시했던 용역사업과 숱한 토론회, 공청회는 무엇이었는가. 또 조례제정은 장난이었는가. 갈등만 증폭시켜 놓고 슬그머니 얼굴을 바꾸는 전북도와 도의회는 무엇하는 곳인가. 이 문제의 중심에는 김완주 지사의 어정쩡한 태도가 자리한다.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과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내에서 전북문화재단 설립이 거론된 것은 10년 전이다. 유종근 지사 재임시인 2001년 나왔다가 유 지사 퇴임과 함께 수면 아래로 잠겼다. 이때 이미 경기도(1997년)와 강원도(1999년), 제주도(2000년)는 문화재단이 출범했다.
그러다 재단 설립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은 김완주 지사후보였다. 2006년 도지사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 도내 36개 문화예술단체가 문화예술위원회 설립을 건의했고 김 후보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북도가 내세우는 백지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재정 부담이 많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설립으로 인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당초 전북도는 200억 원(문예진흥기금 172억 원 포함)의 기금을 조성, 도의 일부 사업을 이양해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정도의 적은 기금으로 만족할만한 사업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우기 한국소리문화전당 등 3대기관을 통합할 경우 비용과 운영비, 초기비용 등도 만만치 않다.
또 당장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도 불보듯 뻔하다. 도깨비 방망이를 갖지 않은 이상 처음부터 대단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오히려 문화예술계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도지사의 자기사람 심기 등 비난받을 일만 잔뜩 생겨날 것이다. 다른 광역문화재단 역시 탐탁치 않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단은 설립되는 게 낫다.
첫째는 문화재단 설립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관(官)보다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해 창의적으로 나가는 게 맞다. 지금까지 보아왔듯 관의 비전문성과 경직성, 순환보직 등으로 문화정책은 항상 답보상태였다. 여기에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풍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다.
둘째는 지역문화와 관련된 큰 흐름이다. 현재 광역문화재단은 16개 시도 가운데 11개가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12월 중에 충북문화재단이 출범한다. 그렇게 되면 광역문화재단이 없는 곳은 전북과 울산 경북 충남 등 4곳에 불과하다. 이들 광역문화재단은 지난 달 1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손잡고 협의회를 구성했다. 지역문화 진흥의 핵심주체로서 정책과제 발굴과 역량강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문광부는 올해 말까지‘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수립을 약속했다. ‘친구따라 강남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광역문화재단은 이미 문화분야에서 중앙정부의 핵심 파트너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북문화재단 설립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완주 지사의 의지다. 나아가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미래를 보고 순수하게 ‘문화’그 자체로 접근하라는 말이다. 선거 때 자신을 도운 사람을 의식한다든지 소위 관변의 소수 ‘문화권력’을 챙기려 해선 안된다. 또 욕 먹지 않고 넘어가려 해서도 안된다. 이와 관련, 충북문화재단은 최근 신선한 선례를 남겼다. 대표이사 선임문제로 1년을 끌어오다 이시종 지사의 결단과 충북예총·민예총·문화원 등 3자 합의로 타결을 보았다.
사실 문화재단 설립은 말 많고 탈 많은 일이다. 그럼에도 문화 자치역량을 키우기 위해 가야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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