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 영산대 교수
사람이란 개인이 아니라 관계로 이뤄진 존재다. 사람을 한자로 인간(人間), 즉 ‘사람 사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제 한 몸 건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 때라야 참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 짓을 해야 사람이지!”라는 우리 속담도 같은 의미다. 여기 ‘사람 짓’이란 곧 상대방과의 사이를 제대로 수행할 적에야, 즉 소통할 수 있을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덕담으로 자주 쓰는 ‘사이좋게 지내라’는 당부 속에도 그런 뜻이 담겨있다.
이 점에 주목한 것이 유교의 오륜이다. 오륜은 5가지 인간 관계망, 즉 네트워크를 뜻한다. 부자간, 부부간, 벗들 간의 사이를 잘 이룰 때라야, 사람다움을 획득한다. 오륜의 핵심은 나를 중심에 놓지 않고, 외려 상대방을 중시하는 데 있다. 노랫말을 빌리자면,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의 처지로 바꿔 생각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사실이다. 옛날 공부란 입장 바꿔 생각하기를 몸에 익히는 과정을 일컬었다. 명륜당이라, ‘오륜을 닦아 밝히는 집’이 대학(성균관)의 본부건물이었던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컴퓨터 통신망이다. 관계를 맺어 서로 연결하고 또 소통한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핵심도 ‘사이’에 있다. 인간의 간(間)과 인터넷의 인터(inter)는 그 뜻이 똑같은 것이다. 인터넷의 특징은 정보교류가 상호적이고, 수평적이라는 점에 있다. 인터넷은 위에서 하달하는 명령보다는 평등하게 교류하는 정보가 주를 이룬다. ‘사람의 사이’가 상대방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사람다움을 이뤄낸다면, ‘정보의 사이’ 곧 인터넷 세상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람들의 자발성으로 구성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사람이든 인터넷이든, ‘사이’는 도덕성을 본질적으로 내장한 듯하다.
이 사이를 이어주는 것을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란 청와대나 정부청사, 혹은 의사당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만이 아니다. 도리어 비근하고 구체적인 일상 즉 가족 간, 동료 간의 사람-사이를 적절하게 소통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기능은 전형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문제, 즉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다. 공자가 정자정야(政者正也)라,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라고 지적한 까닭이다. 문제는 이 ‘사이’가 힘과 돈을 가진 자들에 의해 망가지고 왜곡되는 데서 발생한다. 그리고 언론기관과 정치가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문제는 심화된다. 정치는 본래부터 정치가의 전유물이 아니며, 소통은 언론기관의 사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전문가들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장삼이사의 평범하고 서투른 사람들이 행하는 유일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안철수 원장의 1500억원 기부를 정치적 행보로 규정하며 “과학자는 과학을 해야 한다. 왜 정치권에 기웃거리느냐”고 힐난한 것은 정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다.
이 지점에 오늘날 ‘나는 꼼수다’로 상징되는 사적 미디어의 흥기와 ‘안철수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현상은 모두 사람의 사이와 정보의 사이가 공정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다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듯, 사람과 정보의 사이를 제대로 소통하는 자가 정치가일 따름이다. 아니 평범한 시민인 내가 잘못된 정책에 분노하고 ‘쫄지 말고’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곧 정치다. 시인도 이 생각을 응원하는 듯하다.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 시와 경제의 사이 / 정치와 경제의 사이 (…)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 억압과 통계만 남을 뿐이다.” (김광규, ‘생각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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