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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美와 실용성 중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

▲ 전주시가 지난해 12월 29일 '전주시 아름다운 건축상' 대상으로 선정한 전주우체국 청사. 연합뉴스
■ 쟁점 자료 분석하기

 

(가) 벽돌들은 일반적으로 너무 차지거나 버석거리지 않으며 빛깔도 부드럽다. 거기다가 어저귀 따위의 풀을 터럭처럼 가늘게 썰어서 섞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초벽하는 흙에 말똥을 섞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질겨서 터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 동백기름을 넣어서 젖처럼 번들거리고 매끄럽게 하여 떨어지거나 갈라지는 걸 막으려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기와를 이는 법은 더더욱 본받을 만하다. 모양은 완전히 동그란 대나무 통을 네 쪽으로 쪼개 놓은 것 같고 크기는 두 손바닥만 하다. 일반 민가에서는 원앙와를 쓰지 않는다. 서까래 위에는 산자널을 엮지 않고 돗자리를 여러 겹 펼쳐 놓기만 한다. 그런 뒤에 바로 기와를 덮을 뿐 진흙을 깔지 않는다. 기와 한 장은 엎어놓고 한 장은 젖혀놓아 서로 암수가 되도록 맞춘다. 기와와 기와의 틈에는 석회를 발라서 모든 기왓골의 층을 발라 매운다. 그러면 쥐나 새가 뚫을 일도 없고, 위는 무거운데 아래는 텅 비는 문제점도 해결된다.

 

우리나라의 기와 이는 법은 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붕에는 진흙을 두툼하게 펴놓기 때문에 위가 무거워진다. 담벽은 벽돌로 쌓지않기 때문에 네 기둥은 의지할 대가 없어서 아래는 텅 비게 된다. 기왓장은 너무커서 지나치게 휘어지고, 휘어지기 때문에 빈 공간이 저절로 많아진다. 그러니 진흙으로 매우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진흙이 무겁게 내리누르니 기둥이 휘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진흙이 마르면 기와 밑이 저절로 떠서 기와 비늘의 층이 뒤로 물러나면서 틈새가 생긴다. 결국 바람이 들어오고 비가 샌다. 참새가 구멍을 뚫고 쥐가 숨어 살게 되며, 뱀이 똬리를 틀고 고양이가 헤집고 다니는 근심을 어쩌지 못하게 된다.

 

집을 짓는데 가장 공이 큰 것은 아마도 벽돌일 것이다. 높은 담을 쌓을 때뿐만 아니라 집 안팎에서 벽돌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넓은 뜨락도 눈 가는 곳마다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다. <박지원, 열하일기> (나) 콜로세움에서는 그리스 사람들이 알기는 했지만 대규모 건축에 사용한 적 이 없는 '아치의 원칙'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아치와 아치통로의 체계가 줄지은 아치로 이루어진 3개 층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둥근 아치 구멍들은 구조 원칙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정면부는 '반듯한 덮개'라는 그리스 구조 원칙도 드러난다. '받치는 기둥과 누르는 가로대'라는 원칙은 줄지은 아치들에 의해 가려졌다. 단순하면서도 눈에 덜 띄는 방식으로 그리스 구조원칙에 전혀 다른 질을 부여했다.

 

콜로세움 정면부에서 기둥과 가로대는 실질적인 기능을 뺏기고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 콜로세움에서는 기둥과 가로대가 신전 건물에서처럼 받치거나 누르지 않는다. 건축물에서 수직과 수평으로 작용하는 힘들을 이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형태가 없는 '담' 덩어리를 구조화된 '벽'으로 변화시켜 준다. 그리스식으로 독립적이고, 로마식으로 담을 구조화하는 두 형식으로 기둥과 가로대는 이후로 유럽 건축사에서 가장 많이 변주된 모티프들이다. (중략)

 

<감옥> 2판이 나오던 해에 '로마건축의 위대함에 대하여'도 나왔다. 그로써 이제까지 그리스 미술을 추앙하던 빙켈만 주변 학자들과 피라네시 사이에서 연기만 나고 있던 싸움이 본격적으로 불길을 뿜었다. 피라네시는 답변과 매서운 논평으로 자신의 건축관, 또 로마 건축의 기원이 에트루리아 예술이라는 이론을 옹호하였다. 177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 싸움은 잦아들었다. 피라네시는 옛날 그리스 식민지이던 남부 이탈리아로 여행을 해서 파에스툼의 신전들을 보았다. 그의 생각에 이 그리스 신전들은 로마 건축물이나 <감옥> 과 같이 숭고하고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피라네시가 문제삼았던 것은 로마예술의 기원이 아니라, 빙켈만의 이상인 그리스 미술의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에 대한 반대개념인 '숭고함'의 표현의 질이었다. '숭고함'의 이념을 도입함으로써 피라네시는 건축을 목적지향성에서 해방시켰다. 피라네시의 건축은 그림에서 이미 완전한 효력을 보인다. 그곳으로부터 에티엔 루이 불레 같은 사람의 자율적 건축으로의 길이 곧게 열린다. <롤프 h.요한젠, 서양건축>

 

(다) 공간에 스타일을 담는다.

 

아름다운 집은 화려하게 꾸민 집도 멋진 가구와 신형 전자 제품들이 그득한 집도 아니다. 가족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집. 화사와 학교를 마치고 어서 돌아가 머물고 싶게 하는 곳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다. 집은 단지 멋지게 꾸미는 것만으로는 가치가 없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고,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밤에는 작은 촛불 하나 밝혀두고, 식탁에는 항상 꽃 한 송이 꽂혀 있으며, 늘 정갈하게 정리된 상태로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집......,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지친 몸으로 돌아와 편하게 쉴 수 있고, 아이들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며 감성적으로 자랄 수 있는 집, 바로 집은 이런 곳이어야 한다. 사람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따로 있겠지만 우리 가족의 경우는 남들과 비교하거나 욕심을 과하게 내지 않고 삶에 만족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집을 꾸미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던 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내는 공간인 집이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바람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치장하거나 신형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는많은 돈을 쓰면서도 살림살이를 사는 일에는 참 인색하다. <권은순, 이야기가 있는 인테리어 집>

 

■ 쟁점 논제

 

 

가) 논제

 

(가)의 내용을 요약하여 서술하고, 살고 싶은 집은 미와 실용성 중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하시오. (900자 내외)

 

나) 면접 논제

 

- 내가 살고 싶은 집, 미와 실용성 무엇인 우선일까.

 

-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도 되는가.

 

- 건축방식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 쟁점 자료 비판적 읽기

 

 

(가)의 비평

 

(가)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중국에서 보게 된 건축의 방법을 우리나라의 방식과 대조하여 쓴 글이다. 그는 중국인들의 건물 짓는 방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중국인들의 건축법에 대하여 찬탄을 거듭한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구조가 갖고 있는 결함을 해결하고 반듯하게 집을 짓고 있음을 설명하며 우리나라 집 짓는 방식은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박지원의 긍정적인 자세를 읽을 수가 있다. 그는 중국을 여행을 하면서 새롭게 접하는 문물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살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제시문에서는 우리나라의 벽돌과 기와 이는 방법을 말하면서 중국의 방식은 본받을 만하다며 우리나라의 집짓기의 내용과 방식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인들의 방식은 아주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지원의 이 글에서 우리는 문화라는 것은 비교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내기도 하고 또 새로운 방식을 배워 기존의 방식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그의 철학적 사고의 일면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을 그는 이용 후생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의 비평

 

역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E.H 카아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또다른 역사가들은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도 하였고,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느냐하는 것은 당대의 가치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도 하였다.

 

건축의 역사를 조망해보면 초기에는 단순히 비나 사나운 맹수를 피하기 위한 실용성에서 건물을 지었을 것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떠한 건축 양식을 갖고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서양건축의 내용을 말하고 있다. 콜로세움 건축이 그리스구조 원칙도 나타나고 어떠한 공통적 특징이 있으며 거기에는 하나의 정신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건물은 단순한 구조물이지만 건축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 속에 정신이 들어있다. 건축사를 들여다보면 모든 건축물은 전시대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건축가의 이념이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서 그 시대의 정신이 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건축사를 보아도 어떠한 양식이 형성이 되고, 그렇게 형성된 형식을 계승하면서 그 시대의 가치관이 들어가면서 건축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의 비평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집에서 살고 있을까? 거주하기 위한 단순한 집에서 살고 있는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가. 이 글의 저자는 집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있는 곳,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 영화를 봐도 좋은 곳, 오래 머물고 싶은 곳 등으로 온 가족이 협조하여 집의 작은 변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한다. 살림을 하는 것에 모든 가치를 주고 가족이 편하고 즐겁게 살기 위한 곳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제시문 (다)처럼 사람들은 살림에 집중하여 이러한 이상적인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온가족이 만족하면서 음악실같고 영화관 같은 그런 집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집이라는 곳이 온 가족이 휴식하는 곳이니 (다)글의 내용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실제로 이렇게 살림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상적인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또한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며 카페 문화가 늘어가고 영화관이 활황을 이루는 상황들을 볼 때, 자신이 원하는 집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 쟁점 확대하기

 

 

가) 아름다움이 우선이어야 한다.

 

건물은 건축가 가우디가 지은 것처럼 화려하고 개성적인 건물이어야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편리함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건물을 지은 사람의 특성이 드러나야 하고 그 특성이란 미적인 특성으로 비로소 그 건물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수십개의 똑같은 구조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건물마다 미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야 아름다운 건축물이 된다. 따라서 건축물에는 건물을 지은 사람의 미적인 안목에 의해서 그의 의도에 따라 개성적으로 지어져야 한다.

 

건물을 지을 때 여러 가지 미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 건물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건물에 맞는 치장을 해야 한다. 사용하기에 편리한 용도로 지어진 구조물을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건축물에는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의 정신이 들어가 있으며 그 가치관에 맞게 지어진 건물이어야 한다. 요즘에 말하는 인테리어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실용성과 미적인 것들을 합해서 일컫는 것이지면 궁극적인 것은 미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진 건축후의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건물을 지을 때 설계를 통해 여러 내용물들을 배치하여 지었겠지만 결국은 아름다운 건물이어야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또한 화분이라든가 실내 정원에 식물 가꾸기, 창문, 문, 커텐, 가구 등 적절한 가구들을 배치하여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 볼 때, 건물은 결국 아름다움이 우선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아름다움이 있는 건물은 머무르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이라는 목적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 사용하고 싶은 건물이라는 면에서는 실용성과도 맥을 이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실용적인 건물이 미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논제에서는 아름다움이란 꾸미는 것으로 한정지어 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나) 실용성이 우선이어야 한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삶이라는 최소한의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건물이라는 것은 용도가 있으며 그 용도에 맞는 건물이 되어야 한다. 건물은 어떠한 구체적인 원칙이 있어야 그 건물의 실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실용주의자는 가치의 변화나 현실의 사회문제에 더 개방적이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 실용주의자는 상황 자체의 강점과 약점에 비중을 두며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결정한다. 인간에게 있어 건물은 이러한 실용성에서 출발하였다.

 

하나의 건축물은 사람과 일상적인 관계를 맺고 친밀해야 하며 사용자의 동선 등을 고려한 실용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에 맞는 건물이어야 되며 미적인 측면이나 유행 또는 전통적인 어떤 양식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미적인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건물유지비가 많이 들 수도 있다. 디자인을 위주로 하다보면 실제적으로 난방비가 많이 들거나 유지비가 많이 들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건물은 사용하려는 사람의 목적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창문이나 문 등도 실제로 사용할 때에 편리해야지 재료의 미적인 감각이라든가 색상을 고려하여 다른 재료를 쓴다든가 하는 것은 미적인 측면으로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용주의자는 실제로 작동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 논제에서 실용성이란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으로 한정지어서 논하는 것이 주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미적인 측면을 궁극적으로는 건물의 목적이라고 할 때 실용성이라고 확대시킬 수도 있으나 이것은 이번 논제 출제자의 의도를 잘못 읽은 것이다. 모든 논술은 자신의 관점에서 근거를 가지고 논하면 된다. 그것이 논술의 출발이요, 논술의 마지막이다.

 

 

■ 쟁점 기출 문제

 

 

가) 논술

 

[2009 서울대 정시 논술]

 

한옥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에 전통문화의 계승과 변동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1,400자 이내)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포함하시오.>

 

1. 문화재 한옥과 한옥마을 한옥은 한옥으로서의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2. 한국식 아파트에서 찾을 수 있는 한옥의 요소는 무엇인가?

 

3. 가옥 구조와 삶의 방식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 면접

 

[2005 연세대 면접]

 

1-1. 기후특성에 따라 건축특성을 기술하시오.

 

1-2. 생체기후도에 관한 개념과 환경개선에 대해서 기술하시오.

 

2-1. 비잔틴 건축구조의 특성을 그림을 그리고 설명하시오.

 

2-2. 고딕건축구조의 특성을 그림을 그리고 설명하시오.

 

 

■ 학생 글과 교사 총평

 

 

논제 : 위 [가]~[다]의 내용을 비교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기]의 현실에 대해 인간의 비이성적 측면에서 비판해 보시오. (본보 12월 7일자 제시문에 대한 학생글)

 

 

1. 학생 글

 

운전자의 입장에서 '머피의 법칙'은 꼭 자신에게만 적용된다. 교통체증 속에서 내가 차선을 바꾸면 그 직후 내가 빠져나온 차선의 길은 원활하게만 뚫리는 것 같다.

 

운전석에 앉게 된 운전자는 겁날 것이 없다. 일상생활에서는 두려움에 몸을 사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던 인간이 운전을 하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미래와 인생을 과학기술(자동차)에 위임한 채로 속도에 집착한다. 그런 운전자에게 차선 바꾸기는 속도에 대한 욕망의 충족이다. 깜빡이 하나만으로 자신의 의사를 알린 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가 양측의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거나 한쪽이 너무 욕심을 부릴 때 사고가 발생한다. 현재의 쾌락에만 집중하다가 관심밖에 두었던 육체와 미래를 잃게 된다. 비이성적 사고(思考)는 인간을 사고(事故)로 내몬다.

 

뿐만 아니라 '운전하면서 느끼는 분노', '정체로 인한 짜증'과 같은 표현처럼 인간은 부정적 감정의 원인을 외부 상황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운전의 폭력성과 감정적인 운전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도로에서의 익명성은 운전자를 공격적이고, 감정적으로 만든다. 주목할 것은 평소에는 평범하기만 했던 사람조차 운전대만 잡으면 변하는 것이다. 차선이 밀리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차가 선로에 껴들었기 때문'만이 아닌데도 인간은 감정적으로 외부적인 영향만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단, 이 모든 것은 운전자가 군중 속에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 속도가 제한 된 상황에서, 여기저기 차들이 끼어들기까지 하는 경우 운전자는 '다른 차선으로 옮겨봤자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판단력을 잃고, 남들처럼 여기저기 차선을 이동한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 이성과 감정(비이성)이 공존한다. 이를 인간의 이중성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운전석에 앉았을 때 비이성적 사고만 계속한다면 결국 운전자들은 다시 이성과 감정이 조화를 이룬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다시 지킬박사로 돌아오지 못한 채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하이드처럼 말이다.

 

소명현(전주 솔내고 2학년)

 

 

2. 교사 총평

 

우선 소명현 학생의 논술문은 매우 훌륭하다는 점부터 밝히고 싶다. 더 완벽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완할 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위 논술문은 두 가지를 묻고 있다. 각 제시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고, 이를 전제로 [보기]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이성을 공통점으로 한다. 그러나 [자료1]의 운전자는 속도에 빠짐으로써 행복과 기쁨을 놓친다. [자료2]는 왜 운전대만 잡으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비인간적이 되는지 묻고 있다. [자료3]은 근거 없는 찬양에 네덜란드인들이 광기에 빠져 분별력 없는 행동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점을 간결히 밝힌 다음, 비합리적인 사고가 [보기]의 '내 차선이 항상 더 밀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 결과 마지막 순간에 차선을 바꾼다는 점을 비판해 보이면 된다. 인간이 만든 기계의 속도 앞에서 또는 대중의 광기 속에서 인간은 삶의 본질을 잃는다. 주객이 전도된 삶의 비이성적인 모습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와 경쟁 속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이해 분석력

 

대학의 논술문은 친절하게 문제에서 제시한 내용에 답하는 글쓰기 형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 요약하기, 비교하기, 비판하기라 할 수 있다. 이번 논술 역시 이들을 염두에 두었다. 논제는 비교한 후 비판하라고 한다. 논술에서 비교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는 일이다. 간결하게 기준점을 제시하고 비교한 후 전제를 바탕으로 비판을 한다면 이상적인 답안이 될 것이다.

 

△창의적 사고력

 

'머피의 법칙'이라는 어휘를 적재적소에 사용한 점이나, 도로에서 정체 현상의 원인을 외부적 현상이나 익명성으로 분석한 점이 뛰어나다. 운전석에만 앉으면 조급해지는 것을 일상의 상태와 비교해 본다면 인간의 비판적인 모습을 쉽게 부각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문제 해결력

 

논제가 요구한 두 가지 사항을 모두 해결하고 있다. 좋은 논술문이란 묻는 내용에 합리적인 근거나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상 반론을 꺾는다면 더할 나위 없다. 논증이 전제와 결론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그 전제가 충분하면서 다양하고 대표성이 있을 때 문제 해결력은 최선이 될 것이다. 왜 비이성적인지 이유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 순간에 차선을 바꾸는 일이 왜 문제인지 비판할 때 문제의 답을 충족하게 된다. 최기재(전주 전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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