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었다. 30년 전 사모했던 연인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안도현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84년이었다. 물론 시로 였다. 그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통해서였다. 그 시를 읽는 순간 심장이 딱 멎는 듯했다. 서정(抒情)과 서경(敍景), 서사(敍事)가 적절히 어우러진 절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시는 이 정도는 돼야지!" 그러면서 내심 "한국시단에 뭔가 큰 기념비를 남기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그 기대를 허물지 않았다. 이후 발표한 시와 동화, 산문들은 늘상 잔잔하며서도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그 시인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에 어찌 설렘이 없겠는가. 인터뷰는 안 시인이 재직하고 있는 우석대 예술관 4층 교수연구실에서 진행되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휴대폰이 없어 연락하기기 쉽지 않던데요.
"한 5~6년 전에 잃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성적처리 등으로 계속 학교에 나왔습니다."
- 휴대폰이 없으면 불편하지 않습니까?
"휴대폰을 쓰지 않는 편리함이 99라면, 불편함은 1정도 되는 것 같아요."
- 방학 때 특별한 계획이라도?
"보름 정도 어디 숨어있을 예정입니다. 전화도 안 되고, 인터넷 없고, 그런 데 있잖습니까. 학교 있으면 왠지 자잘한 것이 많더라고요. 글 쓸 것은 방학 때 몰아가지고…"
- 보름 전쯤, 우석대 문창과 학생들과 함께 '사랑의 연탄나누기운동'에 동참해 연탄 나르는 모습이 신문에 났던데요. 「연탄시인」으로 불리는 등 겨울만 되면 연탄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연탄이 한 20년 전만 해도 겨울에는 정말 없어선 안될 것이었잖아요. 지금은 어린 친구들은 거의 기억도 하지 못하는 잘 모르는 존재가 됐죠. 「연탄시인」이란 이름이 붙어 다니는 게 지금은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안 시인은 고등학교 때 자취하면서 연탄을 자주 갈았다고 한다. 이 때부터 연탄에 관한 여러 편의 시를 썼다. 널리 애송되고 있는 '너에게 묻는다'는'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가 전부다. 이 석줄짜리 시로 그는 국민시인 반열에 올랐다.)
- 시인은 곳곳에서 '내 시의 사부(師父)는 백석(白石)이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매력 때문에 끌린 것입니까?
"제가 습작시절부터 많은 시집을 읽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반쪽만 읽었더라는 거죠. 나라가 분단된 이후에 문학도 반쪽으로 나눠지고, 그 반쪽 속에 없는 정서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백석의 북방정서죠. 또 하나는 우리 시를 이야기할 때 아직도 좀 이해가 짧은 사람들은 시를 순수와 참여로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백석의 시는 일제 강점기 때 저항의 몸짓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중도 내지는 중용 그런 것을 보여준 시인, 세상이라는 시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보편적 정서를 끄집어 낼 줄 아는 시인이어서, 지금도 배울 게 많은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들한테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 물어봐도 백석이 늘 첫번째죠."
-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1980년대라는 암울한 시대상황과 맞아 떨어지기도 했고, 이 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설명해 주시죠.
"제가 원래 경상도 출신입니다. 20살 때 전라도지역에 와서 대학(원광대)을 다니면서, 그 때만 해도 똑같은 대한민국이지만 경상도의 현실과 전라도의 현실은 제 눈으로 봐도 차이가 많이 있었거든요. 그 불균형을 눈으로 보면서 전봉준으로 상징되는 저항의 목소리를 체감하게 된 거죠. 또 그게 80년대라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에 문학이 어떻게 하면 사회와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였거든요. 또 하나는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광주항쟁의 좌절과 1894년에 일어난 동학혁명의 좌절을 좀 겹치게 해 보자, 그런 의도가 있었죠."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로 시작하며 역사를 성공적으로 시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 이쪽에 와서 지역감정 문제를 피부로 느낄 기회가 많았겠어요?
"저는 어릴 때 외할머니가 '전라도 사람'이란 말을 쓰지 않고'전라지기'라는 말을 썼었거든요. 산지기, 문지기할 때처럼. 그러니까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까 불이익 당하고 피해를 입은 것은 호남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 동서화합에 기여하고 계신거군요?
"모르겠습니다. 경상도 가서, 케케묵은 생각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사석에서, 술자리에서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저한테 죽죠.(웃음)"
- 동시집 '냠냠'을 내는 등 음식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시 창작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이죠. 그런데 음식이라는 게 단순히 허기를 채우고 미각을 즐겁게 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시 쓰기가 종이 위에 펜을 꺼내서 쓱싹쓱싹 쓰는 게 아니고, 그게 최명희 선생 같은 분은 '바위 위에 새기듯이'한 것처럼, 철저한 장인정신을 투여해야 되는데, 음식도 그냥 뚝딱뚝딱 차려서 먹는 게 아니고, 그런 면에서 음식 만들기와 시 쓰기는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 도종환 시인은'안도현론'에서 안 시인을 '상상력의 기관차'라고 했습니다. 시 창작에서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상상이라고 하는 건 공상이나 몽상하고는 좀 다른 영역이죠. 시라는 게 있어야 하는 큰 이유가 지금하고는 다른 어떤 생각을 찾아내고 그것을 언어로 말하는 게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존의 어떤 질서나 방법하고는 다른 무엇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런'시적 순간'은 창의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끊임없는 창의성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개입되지 않으면 안 되는 요소고…."
- 신경림 시인은 일찍이 안 시인을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의 시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작고 평범한 것에 대한 관찰력이 남다른데 비결이 뭔가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80년대 시하고 사회하고를 만나게 하는 데 골몰하다 보니까 작은 것보다는 큰 것, 그러니까 거대담론 쪽에 시가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민주화나 통일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계속 시를 그 방향으로 가져가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작은 것 속에도 큰 게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작은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거기서 새로운 발견의 눈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쪽으로 바뀌게 됐죠."
- 시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시인이라는 게 대단한 존재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시인이 대단한 존재이기 위해서는 작고 하찮은 것들 속에 있는 의미를 잘 집어내야만 그 땐 대단해질 수 있다,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누구나 다 좋은 걸 취하려고 하죠. 더 좋은 것, 더 많은 돈,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을 꿈꿀 때 약간 어깃장이라고 할까, 시인은 그런 어깃장을 놓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니다, 작은 것, 하찮은 것, 느린 것, 적게 가지는 것, 시인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 시인께서는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 복직되어 장수 산서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산서생활이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된 것 같은데요.
"1994년에 복직해서 3년간 산서에 있는데 시적인 전환을 꾀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 게 딱 그 무렵이었죠. 나라가 부분적인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고, 한때 별(어떤 이상)인 줄 알았던 현실사회주의가 동구(東歐)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고, 남북간에 약간의 신뢰가 싹트기 시작하고, 하여튼 바꾸자, 세상을 보는 눈과 말하는 방식을 바꾸자…."
- 교사 생활을 접고 전업작가로 8년을 보내다 2004년 대학에 몸 담았습니다. 창작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실제로 8년간 글쓰기에 종사하다 보니까 바닥이 보이는 거예요.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마감에 쫓기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다 써 먹고, 힘이 들었죠. 힘들었지만 자유스러웠습니다."
- 안 시인은 대학 1학년들에게 무조건 시를 필사하도록 한다면서요?
"재수없는 친구들은 필사, 1학기에 한 200편 정도를 빼껴쓰기 하도록 하죠."
- 어른을 위한 동화들 가운데'연어'가 가장 감동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연어'는 밀리언셀러로 '어린왕자'를 쓴 생떽쥐페리와 비교하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어린왕자」에 비하면 「연어」는 밑이죠. 제가 연어를 쓸 때 어린왕자를 롤 모델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고요. 그런 형식의 글, 소설도 아니고 동화도 아닌, 소설이면서도 동화인 그런 양식이 그 동안 없었기 때문에 많이 읽혔던 것 같고…. 내용이 요즘 아이들은 귀하게 키워 놓으니까 오직 자기 자신만 알게 되는데'나'라는 존재라는 게'나'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고 누군가에게 배경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런 메시지를 독자들이 잘 읽어 준 것 같아요."
- 갈수록 어렵고 난해한 시가 많은 듯합니다. 막연하지만, 좋은 시란 어떤 시를 말합니까?
"단순하게 말하면 좋은 시는 맛이 있으면서도 몸에도 좋은, 음식으로 치면 그런 게 좋은 시죠. 저도 좋은 시가 뭔가를 모르니까,(웃음) 시라는 게 시인이 쓰는 거지만 시인의 개인적인 고백 양식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보편적인 공감이 필요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눈을 틔워 줄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까?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많이 읽어야 한다. 읽어야 되는 것은 책뿐만 아니라 세상을 많이 읽어야 한다. 세상에 대해서 연애감정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 술 먹지 말고, 여러 사람하고 술을 먹어 봐야 한다. 시라는 게 세상읽기의 결과물이거든요."
-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영결식 노제에서 추도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를 낭송해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줬습니다. 어떻게 쓰게 됐습니까?
"평소에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제가 좋아했고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시 한편으로 애도를 해보자 한 거죠. 돌아가신 게 5월인데 3월 말에 봉하마을에 가서 직접 뵌 적이 있어요."
- '혁신과 통합 전북지역위' 공동대표와 노무현재단 전북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았는데…. 시인의 정치참여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그걸 어떻게 보면 정치참여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활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시인으로서 또 이명박 정부 이후의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발언할 때는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뭐 직접 정치를 하지는 않을 거고요. 저는 최소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 또 과거로 돌아가는 퇴행과 미래 희망을 보여주는 것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물을 때는 제 소신대로 발언하고 시도 쓰고 참여할 것은 참여하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민주주의는 거꾸로 가고, 남북관계는 거의 파행 수준이고, 4대강은 파헤쳐져서 돈을 쏟아 붓고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침묵하면 그건 정말 비겁한 것이죠."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밝혀 주시죠.
"나이는 아직 몇 살 안 되지만 너무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 빈둥거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시라는 것도 좀 빈둥거리는 시간이 있어야 쓰여지는거든요. 그리고 제가 하는 일 중에 북한에 사과나무 심는 일이 있습니다. 한겨레 통일문화재단하고, 제가 만든 북녘에 나무보내기운동본부하고 2008년부터 평양 근교에 있는 사과나무 농장 3만 평에 사과묘목 1만2000 주를 심었거든요. 원래 3개년 계획으로 10만 평 하기로 했는데 딱 끊겨있는 거죠."
- 전북의 문학 수준과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은?
"근대 이후에 전라북도 문학판이 한국문학에서 큰 역할을 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죠. 미당 채만식 신석정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최근에 신경숙 은희경까지. 경제적인 도세(道勢)에 비해서는 문학적인 전통은 대단한 지역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현 단계는 정체국면인 것 같아요. 특히 시인들이 지나치게 많이 양산되는 풍토는…. 저도 전북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어서 이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운데, 문협 얘기는 안하는 게 좋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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