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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더디지만 새만금 완성되면 전북 비상할 날 올 것"

원로 언론인 진 기 풍 前 전북일보 사장

▲ 진기풍 전 사장이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해 전북일보에 게재했던 전북 푸대접을 질타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아흔이 다 된 미수(米壽)임에도 여전히 곧고 정갈한 풍모, 말끔한 정장에 온화함을 간직한 노신사의 자취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세상의 이치와 사회현상에 대한 직관, 삶의 궤적 등을 잔잔하고 부드러운 어법으로 풀어내는 원로 언론인 진기풍(陳錤豊·88) 전 전북일보 사장. 진 전 사장은 전북일보 평기자로 시작, 편집국장과 사장을 역임하면서 반세기동안 현대사의 격변기에 지역 언론을 곧추세워 온 전북 언론계의 산 증인이다. 다가산 자락이 내려다보이는 전주 고사동 기린오피스텔의 개인 사무실에서 진 전 사장을 만났다.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규칙적인 생활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남들이 건강해 보인다고 말하는데 춘한노건(春寒老健)이라는 말처럼 늙은 사람이 건강한들 젊은 사람 같겠어요. 매일 걷기를 한 20분정도 해요. 사무실에 나와서 책도 읽고 신문도 보고 그러면서 소일해요.”

 

 -신문을 빠짐없이 꼼꼼히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신문을 보시면서 걱정스럽다든가, 짜증나시는 일은 없으십니까.

 “사무실에 나오면 우리 지역신문과 중앙지를 샅샅이 훑어봅니다. 48년째 구독해온 신동아도 짬짬이 보고 모두 읽고 나면 전북일보 자료실로 보냅니다. 해방후 복간한 신동아(1964년9월)를 매월 꼬박꼬박 구독했는데 중간 중간에 20권이 없어져서 전국의 고서점과 소장가들을 수소문해서 모두 구입해 전북일보에 전달했습니다. 마지막 한 권은 꾀 비싼 가격을 주고 어렵게 구했습니다. 신문을 보다보면 학교폭력 문제라든지, 정치판에 돈봉투 문제 등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어요.”

 

 -학교폭력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신지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학교 당국에도 책임이 있지만 학부모들 역할도 중요해요. 가해학생이든 피해학생이든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지면 좀 더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녀 교육이 학교에서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나라당 대표경선에서 돈봉투가 오갔다는 폭로에 이어 민주통합당 경선에서도 돈선거 얘기가 나와 정국이 시끌한데요.

 “과거에도 막걸리선거, 고무신선거 얘기가 많았는데 아직도 뿌리가 뽑히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단위가 더 커졌잖아요. 당내 문제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돈선거 돈봉투 얘기는 많이 없어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주지도 말고 바라지도 말아야 선거풍토가 깨끗해질 것입니다.”

 

 -늘 정직을 강조해오셨습니다만 이 땅에 언제부터인가 정직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학교 교훈에 정직을 꼭 꼽았는데 요즘은 정직이란 말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정직하면 손해본다는 인식때문이겠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편법이 판치고 부정과 부조리가 득세해서는 안됩니다.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직은 신뢰이고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지름길이죠.”

 

 

 -올해는 국운을 좌우할 중차대한 선거가 있습니다.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데 어떤 인물을 뽑아야 할까요.

 “먼저 경륜과 경험이 있어야겠죠. 다음으로 열정과 열심, 즉 성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감도 필요하죠. 특히 대통령은 인사를 잘해야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측근들과 소위 캠프출신들은 일체 배제해야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의 경우 자신을 줄 곧 반대만해온 스탠튼 변호사를 국방장관에 임명했었는데 우리의 경우는 대통령이 자기사람 심기에 급급합니다. 고루 인재를 등용해야합니다. 지역을 차별해서도 안되고...

 

 -그동안 지역개발이나 인사 등에서 전북이 소외됐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소외라는 말은 너무 자학적인 것 같아서 더 이상 쓰지 말자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더욱 분발하고 각성해야합니다. 또 높은자리 올라가고 장관이 되면 전북인들은 너무 몸을 사리는데 과감해야합니다. 국회의원들도 지역 일을 힘써 챙겨야죠. 일본은 국회의원들이 금 토 일 3일간은 반드시 지역구에서 활동합니다.

 

 -서슬퍼런 3공화국시절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북푸대접을 질타하는 공개서한을 보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데...

 “아무리 군사정권이라지만 장관 차관하나 전북사람이 없다보니 도민들 불만이 컸죠. 그래서 박 대통령이 전북을 방문하는 날(1966년 4월 13일) 당시 신문에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을 전북일보에 실었습니다.”

 

 -공개서한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습니까.

 “(63년 제5대 대통령선거)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당시 전북도민의 압도적 지지 덕분이었죠. 그래서 박 대통령의 정확한 득표수(40만8556표))를 적시하고 경제부흥의 도약대에서 전북의 푸대접과 도민들의 실망감을 전달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건의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공개서한을 게재한 효과는 있었는지요.

 “당시 공개서한이 게재된 신문을 장경순 국회부의장이 박 대통령에게 보여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 뒤 무임소 장관과 차관 4명을 전북출신으로 기용했는데 그 이후에는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지역차별이 심화되다보니 그 전에는 추풍령을 경계로 표가 갈리는 남북현상이 있었는데 이후에는 영남과 호남으로 표가 갈리는 동서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아직도 지지부진한 새만금 사업을 보시면 답답하시다는 마음을 피력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황인성 농림장관시절 정부에 대체농지조성비가 많이 쌓여 있는 것을 착안해 새만금사업을 시작했습니다. 4대강 영향을 받아 주춤거리기는 하지만 국책사업인 만큼 언젠가는 되겠지요. 김제출신 탄허스님도 일본 지진 때문에 동해는 손해를 보지만 서해는 영토가 늘 것이다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전북 발전을 위해 발벗고 뛰셨는데 몇 가지 소개해 주신다면.

 “자화자찬 같아서... 한 가지만 얘기한다면 전북도민의 젖줄인 용담댐건립이 치일피일 지연돼 당시 강현욱 지사와 함께 건교부 장관을 만나 사업 추진을 요청했는데 경상도출신 장관이 대선공약사업인 부안댐과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이예요. 그러자 강지사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사표를 꺼내놓았고 나도 경상도사람 때문에 안됐다는 도민보고대회를 열겠다고 압박하자 용담댐 공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평생을 모아온 도자기와 글씨 한국화 등 근현대 거물급 작가들의 희귀 소장품을 고향에 기증하셨는데...

 “고향에서 나를 안아달라는 의미로 고창 무초회향미술관에 내놓았습니다. 지난해 개관 10주년 행사를 가졌습니다. 사실 이 작품들은 나보다 안사람이 거의 모은 것들입니다. 10주년 행사에 안사람이 몸이 많이 아파서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오랫동안 한점 한점 모아 온 작품 가운데는 그 가치가 높아 국내 굴지의 재력가가 매입하겠다고 한 것도 있지만 고향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무초회향미술관에 기증한 작품들은 우리나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서양화가 진환의 ‘牛記8’을 비롯 강암 송성용 김옥균 민영익 신익희 허백련 등 근현대사 인물들의 서예작품과 고려청자 도자기 고서 현판 등 모두 143점이다)

 

 -수차례 고사하시다 8년전 받으신 ‘전북의 어른상’ 시상금 2000만원도 전북애향운동본부와 강암서예학술재단에 내놓으신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그런 상을 탈 만한 자격이 있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어찌어찌하다 그만 받게되었는데...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은하는 작은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갈수록 내 것을 움켜쥐려고만 하는데 그렇게 나누고 내놓고 하시는 삶이 후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사회는 혼자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야지... 서로 나누고 베풀고 하는 나눔문화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2년째 얼굴을 안 밝히고 선행을 실천하고 있는 전주 노송동의 얼굴없는 천사는 전주 뿐만 아니라 전북의 큰 자랑입니다. 이 같은 일은 널리 알리고 선양해야하는 미덕입니다. 지금도 큰 수입은 없지만 수중에 있으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언론인으로서 전북의 산 증인이신데 지역 언론 풍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씀은.

 “요즘 지역의 언론환경이 너무 열악해져서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언론인은 명예로 알고 자부심을 갖고 뛰어야 합니다. 공인의식과 소명감이 필요합니다.

 

 -후배 기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덕목을 꼽으신다면.

 “요즘 기자들이 영리하고 민첩한 면도 있지만 너무 출입처 위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요. 출입처 이외에는 관심을 안 두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기자들은 늘 생각이 깨어있고 사고가 열려 있어서 사물과 세상 일을 남다르게 관찰하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내가 기자시절 고기와 술을 먹지말자는 무주무육일에 착안해 기사를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작고 사소한 모든 것이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때 큰 기사를 발굴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신문 방송을 보면 우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뒤지고 있다는 자책감이 듭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전북이 좋아질 때가 분명히 옵니다. 지금은 더디지만 새만금이 완성되면 타 지역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전북이 비상할 날이 올 것입니다. 현 상황에 대한 불평과 불만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날이 반드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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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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