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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패율제와 꼼수정치

송기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1.17일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정치개혁특위를 열어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 이번 총선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키로 합의했다. 석패율제는 각 당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할 때 지역구와 동시 출마한 중복 입후보자로 명단을 작성하여 이 중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 것이다. 지역구선거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주는 것이다. 호남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도 민주당 등 야당 의원이 당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석패율제가 지역주의 완화와 한국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까? 지금도 각 정당들은 비례대표 후보자명부를 작성할 때 취약지역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호남 출신을 그리고 민주당도 영남 출신을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시키고 있다.

 

원래 석패율제는 2000년 16대 총선 때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제안했었으나, 당시 한나라당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었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영남지역기반을 잠식당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석패율제를 강력히 반대했었다. 그런데 이제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강원도지사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어도 당선되고, 민주노동당이 영호남에서 선전하는 상황이 됐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도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존재하지만 어느 정도 완화된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석패율제 도입을 제안했고,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진보정당과 아무런 논의없이 한나라당의 손을 덥석 잡았다.

 

대부분의 정치선진국들은 석패율제가 갖고 있는 비민주성 때문에 이를 외면하고 있고 독일과 일본에서만 실시하고 있는 선거제도이다. 정당명부비례제를 택하고 있는 독일은 정당에 대한 투표가 중심이고 지역구 선거는 보조적이다. 유권자는 당의 정강과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하기 때문에 석패율제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과거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이 당선됐던 대선거구제에서 현행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당의 중진들이 살아남기 위해 채택한 것이 석패율제이다. 일본에서조차 '계파정치의 산물'로 비판받으며, 구시대적 족벌정치를 더욱 강화시켜준 것이 일본의 석패율제이다.

 

지역주의를 완화시키기 위한다는 명분의 석패율제는 첫째, 유권자에 의해 심판받고 낙선한 정치인을 다시 당선시킴으로서 대의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으며 유권자의 정당한 선택을 왜곡시킨다. 둘째, 궁극적으로 신진정치인의 진출을 막고 유력 정치인들의 당선을 보장해주는 보험용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셋째, 영호남지역의 지역구 의원 수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효과를 가짐으로써 비례대표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규범적 당위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새로운 각오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혁신과 개혁을 강조하며 출범한 민주통합당은 왜 구태의연한 방식의 정치에 동의했을까? 민주통합당 중진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강조한다. 이인영최고위원은 지난 18일 "지역구도를 넘기위한 선거제도로 중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최선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차선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차악은 석패율제, 최악은 현행대로 순 아닐까요?"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한나라당이 중선거제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차악으로 석패율제라도 해야한다는 궁색한 변명이다.

 

왜 4월 총선이후에 구성될 제 19대 국회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선거법을 만들려하지 않는가. 왜 쫓기듯이 선거를 눈앞에 두고 법을 바꿔야하는가. 지난 수십년간 한국정치발전의 발목을 잡아왔던 지역주의 정치를 해소하기위한 올바른 개혁이 몇 개월 늦어지면 어떤가. 개혁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진정성이나 감동이 느껴지지 않고 왠지 '꼼수'처럼 느껴진다. 나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송기도 교수는 한국지역혁신교육원 원장, 주 콜롬비아 대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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