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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부터 파악하라

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요즘 부쩍 늘었다. 여러 정파들이 민주주의의 가치적이고 규범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실상은 2012년 4월 국회의원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을 위시해서 여러 정파들이 더 나은 장사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재정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당들이 당명, 강령, 공천후보 등을 바꾸려는 것은 유권자들의 표를 더 받기 위한 행위이다.

 

여기서 장사로 표현했다고 해서, 필자가 정치행위를 경멸하는 것도 아니고 또 판매행위를 비하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마케팅으로 대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이거야말로 국어에 대한 멸시이다. 유권자 표를 끌어들이는 정치적 행위가 조삼모사(朝三暮四)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권자를 만족시킨다면, 정치공학이라고 불리든 정략이라고 불리든 이러한 행위는 민주주의와 부합된 것이다. 즉 만족하는 유권자가 많아질수록 또 유권자의 만족이 단기간에 머물지 않고 지속될수록 좋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권자 표 획득 행위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각 정파가 추진하는 정치마케팅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의외로 정치권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치인들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쉽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떨어져서 정치권을 바라보면 그 정치마케팅의 결과가 더 잘 보인다.

 

정당을 음식점에 비유하면, 유권자는 손님으로 비유될 수 있다. 각 음식점(정당)은 더 많은 손님(유권자)을 받으려 한다.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던 음식점에 갑자기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그 음식점은 식탁 배치를 바꿔본다. 손님의 동선을 감안하기도 하고, 더러운 주방이 노출되지 않게 또는 반대로 깨끗한 주방이 노출되게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엔 풍수지리 원칙에 의해 인테리어 배치를 바꿔보기도 한다. 메뉴를 단순화시키거나 아니면 거꾸로 다양하게 개발하기도 한다. 또 종업원 더 나아가서는 주방장을 교체하기도 한다. 정당도 공천 과정, 정책 변경 및 개발, 당직 교체 등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정당 지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음식점 매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와 동일한 논리로 유추할 수 있다. 음식점(정당) 인기가 올라가지 않을 때에는 기존 음식점(정당)을 완전 폐업시키고 같은 위치에 새로운 음식점(정당)을 개업하기도 한다. 이름이 바뀌면 과거와의 단절은 조금 더 쉬워진다. 새로운 당명의 사용 여부는 과거 당명의 브랜드 가치, 즉 그 당명에 충성적으로 투표하는 의식적/무의식적 지지자의 수를 계산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당명이 가져다 줄 지지자의 수도 계산해야 한다. 물론 단순 지지자 수보다 경쟁정당과의 상대적 지지자 수를 계산해야 한다.

 

음식점의 기존 위치가 소비자들이 더 이상 몰리지 않는 동네라면 그 음식점을 다른 동네로 이전하기도 한다. 좌 클릭이든 우 클릭이든, 정당의 정책 추진 방향을 바꿀 때에도 새롭게 얻을 지지자의 수와 이탈할 지지자의 수를 비교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좌우나 보혁의 기준으로 전체 유권자들을 배열할 수 있을 때 우파정당은 좌로, 좌파정당은 우로 움직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중간투표자정리(median voter's theorem)가 말하는 대로 중도의 위치가 유리한 것이다. 미국의 양당제가 유럽의 다당제보다 더 중도로 수렴하고 있다. 우파정당의 좌 클릭과 좌파정당의 우 클릭이 자신에게 유리하려면, 몇 가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유권자들을 배열할 때 좌우나 보혁의 기준 외에 감안해야 할 기준이 있는지, 정당의 입장과 어느 정도 일치해야 유권자들이 투표하는지, 각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가 어느 정도인지, 제3의 정당들에 대한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인지 등에 따라 각 당에 유리한 위치는 달라진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거나 엉터리 분석만 믿고 개업했다가 망한 음식점은 부지기수이다. 하물며 제대로 된 분석 없이 당명이나 정책이념을 변경하거나 고수하면 군소정당화, 심하게는 정치적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정당에게 차~암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아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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