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CEO 변신한 유종근 前 도지사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도너츠를 생산하는 '온누리 F&D'라는 회사에 일주일에 두세번 나가고, 열살짜리 늦둥이 아들 뒷바라지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냅니다."
-도지사를 지내신 분이 제빵 공장 회장으로 변신한 게 이채롭습니다. 어떤 회사입니까.
"'리치스 도너츠'(Rich's DONUTS)라는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면서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예요."
이 회사의 유종연 사장은 유종근 회장의 6촌 친척 동생이다. 던킨 도너츠 프랜차이즈를 국내에 선보인 도넛츠업계 선두주자였지만 던킨 본사를 인수한 배스킨라빈스가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자 'Rich's DONUTS'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외환위기 때 거래처 부도 여파로 실패를 맛봤지만 이후 재기에 성공했다. 서울 공장을 파주로 확장, 이전하면서 유 회장이 합류했다. 유 회장은 큰 틀의 의사결정과 재무쪽을 맡는다고 했다.
-대기업한테 납품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 '갑'에서 '을'이 된 심정은 어떻던가요.
"고개 숙이는 것 아무 문제 없어요. (감옥에서) 젊은 교도관들한테도 고개 숙이고 존대했는데 뭐, 아무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훈련시켰던 것 같아요."
-공장 신설할 때 인허가도 받았을 터인데 도지사 하시다가 공무원 상대할 때 느낌이 각별할 것 같습니다만.
"잘들 해주었어요. 공직자들 대하는 반응이나 방법을 알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과거의 나를 버리고 국장급까지는 모두 찾아가 일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한 학기 정도 했는데 아이 가르치는 문제 때문에 그만 두었어요."
-아들을 직접 가르치시나요.
"영어 수학 음악은 직접 가르쳤는데 수학은 이제 가르치기가 버거울 정도예요. 물리 화학 생물같은 과학과목은 미국 대학 교재를 혼자서 볼 정도가 됐어요."
아들 주영군은 미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다 들어왔는데 적응이 쉽자 않아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유 회장이 직접 가르친다. 슈바이처 박사처럼 의료선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지금 히브리어를 배우고 있다. 지인(知人)인 대학 교수가 직접 가르치겠다고 해서 대학이 있는 평택까지 유 회장이 아들을 데리고 다닌다. 수학에 재능이 뛰어나다는 소식을 들은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이 '수학의 정석' 등 수학 관련 책 14권을 선물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대주그룹(광주) 회장에 영입돼 '구원투수' 역할을 하셨는데 결국 법정관리되고 말았습니다.
"부동산 침체에다 세무사찰, 소송 등이 진행돼 어려웠지요. 협력업체들도 현금을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았고 금융지원은 올 스톱돼 곤경에 처했는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법정관리됐습니다."
-당시 호남기업 싹을 말린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부당하거나 억울한 면은 없었나요.
"억울했지요. 대주건설이 정부가 제시한 기준으로 보면 B등급, 최악이라 하더라도 C등급이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D등급으로 판정이 나 워크아웃됐어요. 당시 건설회사로서는 대주건설만 포함됐어요."
-왜 그런 결정이 나왔을까요.
"광주일보를 인수한 게 화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정권한테 밉보였고 손보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지난 얘기지만, F1 그랑프리 인허가 대가로 세풍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5년 실형 받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지금 대법원 같았으면 무죄 판정을 받았을 겁니다. 세풍 쪽에서 '몇월 며칠 몇시에 공관에서 돈을 주고 갔다'고 진술했는데 그날은 다른 지역에서 개최된 행사에 참석한 날이었어요. 그래서 행사 단체 책임자의 진술과 사진을 첨부해 입증했는데 선고 일주일 남기고 공소장을 변경시켜 짜맞추더라고요. 그리고 처남이 전주 리베라호텔에서 밤 12시에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도 마찬가지예요. 당시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세일정 때문에 무주에서 숙박한 날인데 이게 잘 맞지 않자, 자다가 나와서 새벽 2∼3시경에 받아갔다고 공소장을 변경하더라고요. 이건 재판기록에 다 나와 있어요. 알리바이가 입증된 걸 다 무시하고 실형을 선고했는데 한명숙 총리처럼 힘이 있었다면 그렇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힘이 없었던 탓이지요."
-옥중 생활은 할만 하던가요.
"성경에 요셉 이야기가 나와요. 유혹을 뿌리쳤다가 3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얘기인데 하느님 뜻이라고 봐요. 형기 5년 중 1년3개월을 남기고 특별사면돼 나왔어요. 감옥에서는 책도 두권이나 쓰고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팔굽혀펴기는 1분에 60회씩 합니다."
-2002년 대선 경선에 나섰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당시 청와대 쪽에서 출마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정치적인 관련성은 없었나요.
"아, 뭐 그런 얘기는…. 제주 경선 때 꼴찌에서 두번째를 기록한 뒤 울산을 거쳐 광주에서 올라챌 계획을 갖고 경선준비를 하던 참이었는데 광주 경선 전에 소환당했으니까…. 김상현 전 의원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를 배신하는 사람은 없다. 세(勢)가 약할 뿐이다' 참, 실감나는 말입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셨고 그 계기로 정치에 입문한 지 어느덧 17년이 지났습니다.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후회는 없어요.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앞만 보고 가려고 해요. 고통이 있었지만 젊을 때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학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IMF위기 때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 궤도에 올려놓은 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해요. 미국에 남아있었다면 그런 일 못했을 겁니다."
-이야기를 바꿔, 경제가 어렵습니다. 경제학자로서 MB경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은 달라요. 기업 성공한 사람한테 그 기대를 갖고 나라 맡기면 안 돼요. 자신감 때문에 다른 사람 얘기를 안 들어요. 미국 지미 카터가 대표적인 사례지요. 땅콩농장 경영주로서 자수성가한 비즈니스맨이었던 카터가 대통령을 했지만 정치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면 레이건은 성공한 대통령이었어요. 나를 따르라 한 게 아니고 국민을 설득해 가면서 리더십을 발휘했지요.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레이건의 예를 들며 설득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많이 얘기해 드렸습니다."
-일자리, 양극화, 소득불균형 등 경제문제가 최대 화두입니다.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요.
"아마 올해 대선 이슈가 될 겁니다. MB경제도 문제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에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시장경제가 위기를 맞자 케인즈 경제이론이 부상하면서 정부역할이 강조되고 이것이 정석이 돼서 툭 하면 정부가 개입하고 나섰지요. 그 반작용으로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시대적 조류로 득세하면서 무한경쟁만 있지 따뜻한 배려가 없어요. 대기업은 살찌는데 국민은 점점 궁핍해지는데 결국 규제와 따뜻한 재분배정책이 이뤄져야 합니다. 미국이나 독일 등 어느 한 국가한테만 기대할 수는 없어요. 세계 지도자들이 동시에 이런 정책을 펴야 가능합니다."
-자영업자들이 전북에서도 하루 20곳씩 문을 닫습니다. 지방경제는 더 열악합니다. 지방경제를 활성화할 방책은 없을까요.
"구조적으로 우리나라는 지방이 살기 참 어렵게 돼 있어요. 중앙집중이 일본보다 더 심해요. 중앙이 재원을 다 가져간 뒤 찔끔찔끔 나눠주고 있어요. 공항이나 신항만, 도로 등이 필요하면 자치단체 스스로 짓고 경영하도록 하면 되는데 모든 게 중앙정부 승인 사항 아닙니까. 경제도 마찬가지로 자율권이 없으니 어렵지요."
-미국에 계실 때 뉴저지주 주지사 경제자문관으로 일하면서 10년 넘게 지방자치에 관여한 걸로 압니다. 미국과 우리의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하려면 무엇이 과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입법권과 조세권, 인사권 독립이 이뤄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할 수 있지만 상위법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까? 이런 건 실질적인 입법권이라고 할 수 없지요. 지역개발사업까지도 지역실정에 맞든, 맞지 않든 재원을 갖고 있는 중앙정부에 매달려야 하는데 이건 자치라고 할 수 없어요. 조세권과 인사권을 자치단체에 줘야 하고 경찰도 중앙이 장악해선 안됩니다."
-민선 전북지사를 두차례 역임하셨는데 잘 했다고 생각하시는 일, 아쉬움이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공과(功過)는 도민들이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1995년 임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하면 전북이 도약단계에 들어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뒤 IMF위기가 와 얼어붙어 버렸어요. 아쉬움이 남는 건 28억달러 투자계획을 갖고 있던 다우코닝의 전북유치가 무산된 일입니다. 정권(김영삼) 말기가 되니까 정부 관료들이 움직이질 않아요. 자료도 주지 않고 전북에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투였습니다. 만약 부산에서 유치하려 했다면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한밤중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일산 자택까지 찾아가 다우코닝사와 전화연결을 시도해서 투자요청을 했지만 때가 늦었어요. 우리 정부가 한 일이라곤 발표 마지막날 반페이지 짜리 팩스 한장 달랑 보낸 것밖에 없었어요. 그것도 차관 이름으로. 관료들한테 칼자루를 쥐어주어서는 안 돼요."
-도지사로서 도정을 맡았을 때와, 밖에서 도정을 바라볼 때는 많은 차이가 있을 법 한데요.
"후임자의 일을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 하실 생각은 없나요.
"없어요. 공천혁명이다, 중진 의원 물갈이다 해서 나이 먹은 분들이 눈총 받는 걸 보면 아, 이렇게 해서 한 세대가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으신다면.
"미국에서 21년간 교수생활 했는데 제자들 가르친 것도 보람된 일이고, 주지사 경제자문관 하면서 배운 것을 활용한 것도 보람된 일이지요. 민주화운동 하면서 미국의 정계 인사들과 쌓은 인맥도 IMF 때에는 많은 도움이 됐어요.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한 것이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 여생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십니까.
"삶의 마지막을 사회봉사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선교활동과 사회복지 두 분야에 매진하려 합니다. 또 하나는 아이들 양육인데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자립할 때까지는 돌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경제활동도 필수입니다."
-아주 오랜만인데 전북도민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과분하게 사랑을 받아 고마울 뿐입니다. 끝까지 비상했다면 좋았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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