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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발에 속으면 안 된다

 

"나는 그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완전'을 지향했던 것도 그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없어야 된다는 것, 이것이 … 무엇보다도 나의 영혼을 당황케 하는 것이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4·11 선거전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 책을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좁은 문 아닌 큰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지혜와 용기로 정권과 경쟁하고, 지역발전에 관해서는 진실을 과감히 수용하며, '선민 구락부(俱樂部)' 스타일 대신 질박한 서민의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그래서 위선과 권력싸움에 지친 사람들이 흔쾌히 다음 자리를 선사하는, 그런 멋있는 선거풍토를 우리는 정말 가질 수 없는 것일까.

 

현실은 시민의 목소리를 눈으로 듣고 있는, 지극히 눈에 띄지 않는 존재에 분노하고 있다. 못마땅한 지난날의 역정과 현 실태는 답답하고 스스로 비참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회한(悔恨)처럼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과거에 쫓겨 정치를 향한 분노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공정한 룰이 없다'는 불신과 불만이 적지 않다. 이런 불신과 불만은 분노의 또 다른 표출인 것이다.

 

여야 모두 공천개혁을 통해 그 분노를 삭여주겠다고 분주하다.

 

그러나 선거를 두 달 남겨놓고 딴판으로 흐르고 있는 양상은 한심하고 우려스럽다. 석패율제 등 정치개혁안들의 도입이 사실상 좌절됐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오픈 프라이머리'(여야 동시 완전 개방형 경선제) 등 다른 개혁과제들이 무산됐다. 저마다 공천심사에 관심이 쏠려 있고 정치쇄신은 강 건너 불같다.

 

현역 물갈이는 전북에서도 단연 핵심이다. 최대 기반으로 삼아온 민주당이 지탄을 받아왔던 이유에서다.

 

그래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인적 쇄신작업은 국민적 공감대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정세균·정동영 의원이 험지(險地)를 택했고, 장세환 의원이 출마를 접어 물갈이론은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계속해온 다른 중진들도 책임을 공유해야 마땅하다.

 

그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총선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지역정치 질서 재편의 계기가 돼야 한다. 현안들이 줄줄이 틀어지거나 꺾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이나 대선에 빠져 있다. 매니페스토(구체적인 선거 공약) 선거를 주도해 왔던 시민사회 영역마저 당사자로 나서면서 정책검증도 한계다. 한데, 애석하게도 '어느 파는 안 된다' '다선은 물러나라'는 소리뿐이다. 편 가르고, 찢고, 내쫓을 궁리만 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선거후유증에 시달려 왔는가. 바로 그런 행태로 인해 실패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전철을 또 밟고 있다. 이제 정치인들의 오만이 '묻지마 투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되돌아봐야 한다. 습관적 투표가 반복되면서 미련과 후회도 그만큼 누적돼 왔다. 유권자가 깨어 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그렇지 못하면 힘겨운 시기를 이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판의 화장발에 속으면 안 된다. 약점은 감추고, 강점은 살려 자신만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게 화장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큰 물결을 일으키려면 상황이 끄는 대로 끌려갈 수는 없다. 완전을 이룩하기 위해 '없어야 되는' 후보를 지금부터 솎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전북은 언제까지나 분노의 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최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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