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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대 교수는 - 우석대 교수 재직 때 전주의 명창·국악인들 영향으로 판소리 연구

▲ 유영대 교수와 김은정 선임기자가 유 교수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재임 기간 동안의 일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유영대 교수는 남원 보절면 출신이다. 할아버지 대에는 '천석꾼'이었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정치에 몸담았던 선친 대에, 그의 표현대로라면 '조금(?) 몰락'했다. 아버지 유운종씨는 전주 북중과 서울 법대를 나온 지식인이었는데, 일찌감치 중앙 정치에 입문한 덕분에 가족들은 서울로 이사를 해야 했다.

 

중학교까지 남원에서 나온 그는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장터에서 만났던 약장수들의 굿판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래도 우리소리를 놓지 못하고 끝내는 이 길로 들어선 바탕에는 어릴적 정서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학 시절(고려대 국문과) 탈춤운동을 했다. 당시에는 오히려 판소리를 멀리 했는데, 탈춤이 민중적인 장르인 반면에 판소리는 출발은 서민적인 것이었다해도 양반취향적인 속성 때문에 민중운동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소리는 어릴적부터 인연이 깊었다. 장터의 약장수 굿에 대한 기억 말고도 그의 동네에는 동편제의 소리꾼 강도근 명창이 살았는데 남원국악원에서 소리를 가르쳤던 강도근 명창의 소리는 그를 판소리로 이끈 또 하나의 힘이 되었다.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외면했던 판소리를 다시 주목하게 되는데, 그것은 순전히 창작판소리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주목하고 또 기꺼이 판소리연구자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그는 스물아홉 살부터 서른아홉 살 되던 해까지 10년을 전주에서 보냈다. 우석대 국문과 교수로 근무한 덕분이었다. 그때 전주의 명창과 국악인들은 그의 스승이 됐다. 그래서 그는 판소리를 진짜 생생한 예술로 접할 수 있었던 계기는 전주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95년에 모교인 고려대로 직장을 옮겼지만, 그는 판소리 연구자로 이 지역과 특별한 교류를 해왔다. 특히 고향인 남원의 국악 발전에 여러 통로로 참여해온 유 교수는 남원 '국악의 성지' 조성 프로젝트와 남원시립국악단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제안했던 국악성지는 진행과정에서 방향을 달리해 당초 그림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버리고 말았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임기가 끝나 조금은 휴식기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유교수은 여전히 창극 제작 현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하는 '몽유도원도' 제작 때문이다. 10개월 프로젝트로 의뢰 받은 이 작품을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 한국적인 양식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대학원 과정의 문화콘텐츠과를 전담하고 있는 그에게 '창극'은 우리시대의 가능성 있는 공연예술 콘텐츠로 안겨있다. 그래서 '몽유도원도' 말고도 몇 편의 작품을 꾸준히 기획하고 제작할 생각이다. 그의 바람대로라면 우리는 머지않아 더 새롭고 보편적인 음악극을 만날 수 있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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