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엊그제 부산에서 말한 발언도 파장이 적지 않다.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저는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시절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면서 부채인 선친의 비판을 털고 가려는 의도가 보인다.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도 그만큼 확고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언급은 상황에 따라 인식의 정도가 각별하고 민감해진다. 그래서인지 박 위원장은 지금의 시대정신 중 하나가 국민통합이라고 전제하고, "계층·지역·세대 간 격차가 자꾸 벌어지고 있어 국민이 하나가 되는 통합으로 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손잡을 일이 있다면 언제든 그러하겠다는 심경을 드러냈다. 선거철에 나온 발언이지만 아픈 과거를 짊어진 지역으로서 그 말맥을 되짚어 볼 대목이 있다.
전북은 시대의 통증을 앓는 황야의 이리처럼 낙후와 침체의 혐오스러운 고정관념들로 쇠잔의 길을 걸어왔다. 1960년대 이후 국가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 지역발전의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경부 축 위주의 국가정책과 수도권 일극 중심의 편중 개발정책 탓이 크다. 그간 정권마다 지역균형발전정책의 기조에서 공평성이 강조돼 왔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농림어업분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그런 정책의 발로(發露)가 아닐까 싶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로 값싼 미국산 농수산물이 우리 시장을 잠식하면 이 분야의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노력 부족 보다는 누적된 국가정책의 결과로 개발 기회를 갖지 못해 소외감과 지역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공정성의 원칙에 배치된다.
불균형에 정의로운 처방이 내려질 때 사람들은 감격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박 위원장의 사과 발언이 진정성이 훼손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추구하는 정치의 핵심이 '신뢰의 정치'와 '지역균형발전'이 아닌가. 테크닉도, 제스처도, 정치공학도 아니란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생각을 총선과 대선에서 공약사항에 포함시켜야 한다. '신뢰'란 덕목은 매우 소중한 가치다. 그래서 불신의 파도는 배를 뒤집기 마련이다.
전북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집단 사고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갈등과 분열의 사회, 대결 일변도의 정치는 넌더리가 난다. 이번 총선에서 세대교체와 선거구도 변경을 통해 지역정치력을 한 단계 높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한다. 바라는 미래가 분명히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모순과 불평등을 시정하여 공정한 사회로 틀을 바꾸려는 지역의 의지가 더할 나위 없이 팽배하다.
박 위원장은 이에 맞춰 산업화 과정의 피해현상을 신비롭게 조명할 것이 아니라 휘장을 벗기고 실체를 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야당과 무소속의 검객들도 버티고 있다. 전북은 이 새 물결 위에 배를 띄워야 한다. 환경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또 다른 충격이 닥친다. 그렇게 되면 오도 가도 못하고 개펄에 얹힌 배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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