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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권씨 유작 장편소설 '시골무사 이성계' 세상속으로

탈고 후 작고…2년만에 지인들이 펴내

 

 
▲ 故 서권 작가

2009년 탈고한 뒤 작고한 소설가 서 권씨의 '시골 무사 이성계'(다산북스)가 출간됐다. 2년 만에 지인들이 펴낸 이 장편은 삶의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물음과 정면 대결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평생을 변방에서 칼을 휘둘렀으나 정계 근처에도 가지 못한, 늙고 초라한 이성계가 왜적'아지발도'와 국운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남원 인월의 황산벌 전투를 담고 있다.

 

고인과 절친했던 영화평론가 신귀백씨는 발문에서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다룬 '남자 소설'"이라면서 "그것도 단 하루의 핍진한 전투 과정을 담는다는 데 묘미가 있다"고 적었다.

 

본래 그 전쟁은 "지면 죽음으로 답해야 하고, 이기면 그것으로 그만인 싸움"이었다. 겨우 1000여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왜적 1만여 명에 맞선 이성계는 '시골 무장, 물정 모르는 변방의 늙다리, 화살 하나 들고 설치는 벌거숭이'라는 평가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세 번의 목숨을 걸고 전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고려군과 왜군의 군대 진영·전법에 대한 묘사나 무기 사용법, 전투가 막바지에 치닫을 무렵 수 백개의 달이 떠오르는 풍등 장면 등은 압권. 무사들의 세세한 전투 장면은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묘사 불가능한 지점이고, 전쟁신을 읽을 때 화살을 쥐는 들숨과 당겼던 살을 푸는 날숨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할 만큼 박진감이 넘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렇듯 긴장감 쥐게 하는 거대한 전투 과정과 사내들의 고뇌가 중심 기둥을 이루는 가운데 '뒷방 노인네 취급이나 받았을 나이에 세상을 바꿀 꿈을 꾸는' 이성계의 슬픈 운명이 두 기둥 사이를 촘촘하게 채운다.

 

2001년부터 꼬박 7년 간 목숨을 걸고 1930년대 만주항일 독립투쟁을 다룬 장편 대하소설'마적'을 탈고한 뒤 뒤늦게 '실천문학'(2007)으로 등단한 고인은 무서운 집중력으로 글을 썼다. 생전에 집필실이 없어 승용차 속에 들어가 손글씨로 노트를 채웠고, 엉덩이가 짓무를 때에는 의자 위 푹신한 화장실 변기 방석을 구해다 고집스레 써내려갔다.

 

이처럼 글쓰기에 관한 독한 의지는 작가가 의지로써 전설을 만들어낸 이성계에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작가가 세상을 뜬 나이와 소설 속 이성계의 나이도 비슷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 한 권을 갖지 못하고 떠난 시골작가와 말년에 왕권을 넘기고 유랑하게 된 시골무사는 세상의 주목을 받진 못했으나, 묵묵히 세상을 향한 활시위를 당겼다.

 

이처럼 어렵사리 시대의 상처를 담아낸 작가는 그러나 윽박지르지도 부추기지도 않고 나직이 이야기한다. 아무리 늦었다 해도 모두가 망상이라고 해도,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서 팽팽한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이들만이 아름다운 변혁을 꿈꿀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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