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심청'과 창작판소리 '쥐왕의 몰락기'를 보고
지난주 우리 시대의 판소리가 어떤 식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지 보여주는 두 무대가 올려졌다. 개원 20주년을 맞아 올린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원장 정상열)의 창극'심청'(22일 오후 7시 국립민속국악원)과 판소리 공장'바닥소리' 대표로 있는 최용석씨의 '쥐왕의 몰락기'(24일 오후 4시 전주 창작소극장).
각각 단순한 미학을 보여준 두 무대는 연출가나 소리꾼의 명성을 모른 채 접했더라면 다소의 실망감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담백한 무대에서 터져나온 신명은 객석에서 더 큰 환호가 나오게 만들도록 했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심청'은 시각적으로 관객을 압도할 무대미술은 아니었다. 양 옆에 거대한 문을 연상시키는 각각 세 개의 기둥을 세우고 때때로 무대를 기울어지게 한 게 거의 전부였다. 이같은 단출한 무대를 살린 것은 고희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신경 쓴 조명과 영상 덕분이다.
김홍승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오페라 연출의 경험을 살려 판소리를 잘 살리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냈다. 허은선 명창의 도창에 심청(서진희 역)의 마음을 음악이나 다른 배우가 대신해 내면의 고통을 부각시키고, 심청이 선인들에게 몸이 팔렸다고 고하는 대신 동네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심봉사(황갑도 역)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사랑을 강조한 연출에 초점을 맞춘 것.
공연은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까지의 1막과 심청이 왕비가 돼 아비 심 봉사와 극적으로 해후하는 2막으로 구성됐다. 1막이 다소 사실적이고 비극적이라면, 2막은 환상적이고 희극적인 분위기로 대비됐다. 특히 황성 맹인 잔치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맹인들의 '팔도 노래 자랑'은 백미. 경기도 민요'상주아리랑'과 전라도 민요'진도 아리랑','각설이타령' 등이 어울려 정겹게 웃음을 만들어내고, 선글래스를 쓰고 춤을 추는 팔도 맹인들의 익살과 해학이 담긴 몸짓은 객석을 웃음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작곡과 지휘를 맡은 이용탁(전 국립창극단 음악감독)씨는 수성 반주가 아닌 국악기와 양악기가 만난 관현악 구성으로 긴장감과 감동을 더했다.
하지만 슬픔의 한으로 치우치지 않은 새로운 창극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다소 식상한 무대로 비춰지기도 했다. 1막이 비극적인 분위기로 일관해 2막에서 객석을 떠난 관객들도 상당수. 일부 장면은 지나치게 늘어졌고, 또 다른 장면은 속전속결로 진행되면서 상상력이 요구되는 섬세한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효(孝)를 가르치지 않고, 새로운 판타지와 로맨스를 만들어내는 무대로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다음은 소리꾼 최용석씨의 '쥐왕의 몰락기'. 정권 심판가로 평가받는 창작 판소리 '쥐왕의 몰락기'는 '가카'(MB)의 4대강 사업·BBK·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등을 담은 풍자한 네번째 버전이다. "판소리 본향인 전주에서 공연을 하게 돼 영광"이라던 그는 "2008년 촛불 정국 때부터 '가카'가 무한하게 제공해주는 재료로 전국 공연을 올릴 만큼 '가카'의 은덕을 많이 입었다"고 해 초반부터 웃음으로 객석을 흔들었다.
"쥐왕의 내력을 들어라! 쥐왕은 도곡동 계곡에서 도를 닦고 개고기로 몸을 만들어 BBK를 '다스'라 불리는 유체이탈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지금 이곳을 금싸라기 땅으로 만든다는 소문이 나고 있구나~!"
이렇게 풀어가던 공연 중간 중간에 "이것은 '가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면서"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라고 짐짓 모른'체' 하자, 객석에서는 "얼씨구!""좋다!" 외에 그가 요구한 추임새 "쫄지마!"와 (위대한 '가카'를 위한) "꼼꼼하다"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팟 캐스트 라디오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열심히 청취하지 않은 일부 관객들은 웃음이 나오리라 기대한 대목에서 못 웃기도 했고, 몸으로 판소리를 받아들인 관객들은 "속 시원한 에너지가 흘러넘친다"며 환호했다.
갈수록 지루하고 딱딱한 판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관객들이 완성도에 상관 없이 그의 소리를 기꺼이 즐긴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 소리가 나가야 할 길을 보여준 공연. '가카'의 꼼꼼한 수에 맞서 꼼꼼한 소리로 응수하는 그의 도발은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탈출구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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