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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다시 보기

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선거가 광폭으로 휩쓸고 간 자리에 전북 출신 국회의원 26명이 새롭게 탄생했다. 수도권과 전북지역구, 비례대표를 모두 아울러서다. 인재들이 절실한 지역과 정치 현실에서 비교적 역량 있는 인물들의 낙선사태는 안타깝다. 그래선지 당선자 면면이 돋보인다. 그 중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가 여러 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정세균은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6선의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이곳은 장면, 박순천, 윤보선, 김두한, 유진오, 장기영, 정일형, 민관식, 이종찬, 이민우, 이명박, 노무현 등 한국의 지도자 내지는 중진 정치인들이 역대 국회의원으로서 굵직한 정치행보를 보였던 지역이다. 그만큼 이번에 입지가 더 탄탄해졌다.

 

그는 그물눈처럼 촘촘하게 잘 짜인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그런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가난했지만 공부에 충실했고,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육군 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종합무역상사인 쌍용에서 실물경제를 익혔고,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낚았다. 재경·과학기술정보·농림해양수산·건교·통일외교통상·국방위와 산자부 장관을 거쳐 식견을 쌓았다. 따라다니는 스캔들도 없다.

 

정치인 정세균의 강점은 이처럼 차근차근 기반을 다졌다는 점이다. 고집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계단형 전략을 써왔다. 정책 역량과 경력이 쌓이면 또 다른 도전을 하는 그런 꿈을 그려냈다. 수많은 정치인이 그랬던 엘리베이터 전략을 쓰지 않았다. 신중하고 지혜로운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최고의 국회의원에게 주는 '백봉 신사상'을 8차례나 수상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시절에는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대표 등 주요 보직을 맡아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당을 끌어오면서 친노(親盧)·486 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친노-비노(非盧), 주류-비주류 사이에서 완충적인 활동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스스로 "통합과 연대는 내 전매특허"라고 밝혀 대선을 향한 시점에서 야권연대에도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대선도전 의사가 분명한 그에게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아직은 '호남 출신'에다 관리형 리더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수도권 입성으로 전국적 위상을 가진 잠룡으로 뛰어올랐지만 더욱 치열한 승부사 이미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변의 속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대중적 지지도를 올리는 것도 과제다. 리더십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다. 역대 최장 기간 당을 이끌면서 제대로 공천권을 행사해 보지 못했다. 뚜렷한 계파도 없다. 튀는 발언도 자제해 왔다.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것은 판을 키우고 '자기 정치'를 안 했기 때문이라는 비판과 지적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계단의 추억만으로 과연 당의 변신과 국가번영의 불길을 지필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는 민주당과 한국정치에 국민공감의 충격을 줄 수 없다고 본다. 인삼이 홍삼으로 변하려면 한번 솥단지에 찌는 법제(法製)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 정치법제를 거쳐야 한다.

 

전북 최다 선수(選數)인 5선 당선자로도 앞에 놓인 계단은 높고 험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유치 실패와 새만금 사업 등에서 드러난 문제를 혁파할 수 있도록 새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신인들의 열정과 중진들의 경륜을 조화시키고 정치력을 결집해야 한다. 그것이 4·11민심을 따르는 길이자 전북정치인의 좌장 격으로 고향 발전과 국정에 책임을 지는 자세다. 그 성적표는 12월 대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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