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숙(41)씨는 어린 시절부터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었다. 어머니는 내성적인 그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넋을 잃고 이야기에 푹 빠졌다. 고향인 경남 거창을 떠나 남편 따라 전주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그가 예전의 그처럼 이야기를 좋아하던 아이들을 보면서 뒤늦게 동화 구연을 시작했다.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유년 시절을 즐겁게 보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처럼 후회하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동화 구연의 필요성을 알리는 성인 강의를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04년부터 전주시립도서관에서 동화 구연·아동미술 지도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중급 지도자 과정까지 수료한 그는 동화 구연가로 활동하는 선·후배들과 함께 2005년 열린어린이연구소를 차렸다. 이곳저곳에서 활동하는 동화 구연가들이 정보도 나누고 힘을 모아 봉사도 하자는 소박한 취지. 30여 명의 회원들은 동화를 쉽고 재밌게 접하는 강연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무리 재밌는 책을 가져다 줘도, 안 읽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진짜 눈앞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하면, 저 멀리서 놀던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와요. 1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립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화 구연가 상당수가 그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아주 다른 목소리로 내는 법, 띄어 읽는 법 등을 지도 받고 대회에 나가 수상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내 일처럼 기뻤다".
"전 '거북이'였거든요. 동화구연대회에서 입상하기까지 '삼수'나 했어요. (웃음) 연단에 올라갔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거예요. 동화가 생각이 안 나서 버벅거리다 내려오고 이듬해 같은 실수로 또 내려오고. 다들 대회 나가서 떨어지면 창피해서 안 나간다는데, 교수님께서 격려해주셔서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동화 구연에 관한 오해 중 하나가 단순히 동화를 대신 읽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술체인 동화를 대화체로 바꾼 뒤 구연자가 등장인물을 자신에게 맞게 각색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는 "교훈적인 걸 가르치는 동화가 아니라,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까'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면서 "열등감이 심한 아이에게는 열등감을 다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위로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동화 구연에 한 번 빠지면 다들 전도사가 된다"면서 "할아버지는 물론 며느리까지 봉사활동을 다니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심을 가장 많이 가져야 할 젊은 남편들이 동화 구연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게 아쉽다고도 했다.
그는 "남성들은 목소리가 굵은 데다 안정감 있는 저음이기 때문에, 귀를 확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면서 "엄마보다도 아빠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자녀들이 안정적인 정서를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편들이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면, 학교 폭력·왕따 등과 같이 정서적으로 장애를 겪는 아이들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문제가 크게 줄 수 있다고도 했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연구소는 동화 구연을 널리 알리는 일 외에도 시민단체 '굿네이버스'와 성폭력 예방을 돕기 위한 인형극도 정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보통의 인형극이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대신 인형만 조작하는 걸 보여주는 데 반해 이들의 인형극은 배우들이 직접 무대에 서서 인형을 다룬다는 게 차이점. 그는 "동화책을 읽고 싶어도 읽기 어려운 문화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해 순회 인형극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전주삼천지역아동센터(5월23일)를 시작으로 인형극을 보여주면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어린이날,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선물하면서 동화 구연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 그는 "동화는 누구에게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열쇠"라면서 "아이들과 마음의 빗장을 열고 소통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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