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찾는다. 아니 방랑기가 심했던 시퍼런 20대 시절의 흔적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디 갔을까! 한때 보물 1호였는데. 현란했던(?) 젊은 시절을 입증해줄 만한 단서를 잃은 듯 허망하다. 세월의 중력에 늘어지고 균열진 얼굴만 확인하고 나니 씁쓸하다. 낡은 세월의 두께 때문인지, 영민하지 못한 탓인지 책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다만 생의 어떤 출구도 통로도 없는 막막한 체제 속에서, 일체의 가치가 탕진되어 버린 부조리한 세계에 분노했던 '뜨거운 혈기'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다. 나약하고 소심한 인간에서 체제 순응자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거부하고, 일그러진 자아들에게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투척하게 했으니 '아웃사이더'는 나의 삶 전반을 뒤흔든 책이었음이 분명하다.
20대 때 청춘은 바닥을 모르는 그 어떤 목마름으로 늘 허기가 졌다. 그 배경엔 암울한 정치적 상황도 한몫 했겠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가슴을 흥분시키기에 필요한 조건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핍의 나날들로 내 삶은 척박했다. 청춘의 삶을 통과해 버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영웅주의, 지적 허영심으로 지칠 줄 몰랐던 강박적인 난상토론 끝에 내린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론들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그러나 치기어린 내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사실 아웃사이더(국외자)란 말의 처절함을 모르던, 유약하고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시기였기에 콜린의 영국 주류사회에 대한 분석과 '아웃사이더'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이라는 불합리한 세계는 당시 한국사회의 단면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것과 같았기에 더욱 놀라울 뿐이었다. 특히 니체, 반 고흐와 같은 실제인물들을 '아웃사이더'란 관점에서 분석했고 카뮈의 '이방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온 작중 인물들에 대한 분석은 소름이 돋았다.
지리멸렬한 날들을 보내며 뜻도 모르는 철학서를 탐닉하는 현학취미가 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콜린은 아무도 병에 걸린 것을 깨닫지 못하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자각하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 '아웃사이더'라고 말한다.
콜린이 언급했던 아웃사이더들은 지루하고 불만족스러운 일상의 세계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일상이 따분하게 되풀이 되는 것은 고역이며 노예들에게나 알맞다고도 일갈한다. 즉 '아웃사이더'는 인간성의 폭과 깊이가 있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소비사회의 행복을 좇는 지옥 같은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타인과 깊이 연결되지 못해 쓸쓸한 가운데 범죄를 저지르는, 맹목적인 증오심과 섬뜩한 눈빛의 아웃사이더를 수없이 만난다. 일상의 허무와 무의미에서 탈출하려는 육체적 쾌락주의가 성행하고 무한경쟁의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의 낙오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콜린이 말했던 진보적 유토피아가 아닌 것이다. 새로운 가치와 윤리, 국가와 민족의 장래같은 거시적 담론은 사라지고 맹목적 소비주의와 계산적 합리주의가 팽배해가고 있다. 체제에서 낙오한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웃사이더' 즉 루저(loser)로 인식될 뿐이다.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사람, 창조적 아웃사이더만이 자신과 주변을 객관화할 수 있다. 균형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치유불능의 징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아프지 않다고 멀쩡하다고, '뻥'칠 수는 없다. 콜린이 말했던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아웃사이더'가 나타나 자기쇄신을 거듭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인사이더'의 세상은 유통기한이 다한 통조림이다. 따라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역전은 가능해져야 한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지금 나는 '아웃사이더'의 행방을 모른다. 그걸 찾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벅찬 감동이나 세상을 향한 '변혁의지' 대신 스무 살 무렵의 치기와 해후할 것이고 그것이 부끄러워 질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 익명의 청춘시절을 다시 거닐어 보고 싶다.
△ 기명숙 시인은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북어'로 등단,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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