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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들, 4년을 '처음처럼' 일하시오

▲ 논설위원
'처음처럼'이라는 한글 서체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71)가 감옥(대전교도소)에서 개발한 것이다. 상형문자인 한자처럼, 한글도 지시하는 대상과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씨를 쓰려고 시도했다. 이 서체는 출소 후 소주 브랜드로 쓰여지면서 유명해졌다. 두산소주는 '처음처럼'을 로고로 쓰는 대신 성공회대에 1억원의 장학금을 제공했다.

 

그런데 '처음처럼'이라는 글씨를 쓴 동기가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 노트를 쓰다가 글씨가 마음에 안들면 그 장을 뜯어내고 새로 쓰지만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뜯어내고, 앞장을 뜯어내면 뒷장의 멀쩡한 노트가 떨어져 나가요. 그래서 그 다음 장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쓰자는 것, …뭐 이런 뜻으로 시작된 거예요"(김정운의 '남자의 물건'에서 인용)

 

산다는 것, 인생이라는 것은 잘못 쓰여진 노트처럼 결코 뜯어낼 수 없다. 늘 새로 시작하는 마음처럼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6월1일부터는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다. 전북에서는 11명의 지역구 의원들이 전북을 대표해 중앙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 초선의원이 7명이나 된다. 숫자도 적은 데다 초선의원 비율이 높아 정치력 약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중진일 망정 초선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기 나름이다.

 

당선자들은 선거 때 지역발전과 관련한 많은 약속들을 내놓았다. 당선된 뒤에는 머슴 역할을 하겠다며 바위덩어리 같은 무게의 당선사례를 수도 없이 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표를 찍어준 유권자와 도민들은 언행이 일치하는지 주시할 것이다.

 

당선되기는 어렵지만 떨어지기는 쉽다. 지역 일을 등한히 하면 추풍낙엽이다. 이번 선거가 증명하지 않던가. 3선 의원이 신예한테 나가 떨어지고 재선의원이 겨우 턱걸이 당선했다. 무소속 후보의 득표력도 놀라웠다. 당선자와 5% 대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곳도 두 군데나 된다. 신발끈을 한번만 더 바짝 조였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는 간극이다.

 

이런 실정일 진대 허수로이 의정활동을 할 수는 없다. 등원하면 일로 승부해야 한다. 지금 정부 각 부처는 내년도 사업과 예산을 놓고 작업중이다. 등원 하자마자 큰 숙제가 안겨져 있는 셈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장·차관들을 다루기란 녹록치 않다. 그들을 호령할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국회의원 배지 단 기분을 즐길 여유가 없다. 공부하지 않으면 빌빌 거리다 1년 지나고 한 일도 없이 4년을 허송세월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치력 강화다. 전북 정치권은 숫적 열세에다 응집력도 약하다. 현안 문제를 놓고도 국회의원 끼리, 또는 도정과 국회의원 간 유대가 시원치 않았다. 정치권이 똘똘 뭉쳐 제대로 된 지역발전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것이 숙제다.

 

다른 하나는 독창성과 창의성의 발현이다. 전북은 30여년간 낙후된 곳이다. 생각이나 판단, 일하는 방식을 과거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해선 나아질 수 없다. '따라하기 행정', '패거리 정치'로는 비전이 없다. 앞서 갈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새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등원 초기엔 의욕이 넘치지만 시일이 흐르면 매너리즘이 유혹한다. 자리를 탐내고 권위나 내세우면서 잇권에 관심을 쏟는다면 '전승이 수승난(戰勝易 守勝難)'으로 결과되고 말 것이다. 싸움에 승리하기는 쉬우나 그 승리를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임기 4년은 금방 지나간다. '처음처럼'을 쓴 동기처럼 노트 첫 장 쓰는 마음으로 의정활동을 한다면 뜯어내지 않아도 될 두꺼운 노트로 남을 것이다. 지역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중앙무대에서 쫄지 말고 떵떵거리면서 호령하는 의원이 되라고 덧붙이고 싶다.

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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