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 나는 자기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자기 나무를 정하고 1년 내내 자기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게 했다. 글쓰기는 아이들에게 작가나 시인이 되게 하는 공부가 아니다. 모든 공부는,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들여다보고 살아 갈 세상을 스스로 창조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 나무를 정하면 쉬는 시간 나와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나무를 보았느냐고 물어 본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아이가 집에서 문득 자기 나무를 보고 '내일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나무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지 않을까?' 하며 나무를 보게 된다. 내가 다시 나무를 보았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는 보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또 네 나무가 어떻게 하고 있더냐? 라고 묻는다. 아이가 나무를 보긴 보았는데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또 다시 아이들에게 나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제 자기나무를 '다시' '자세히' '보게' 된다. 나무를 다시 자세히 보는 순간 놀랍게도 세상은 달라진다. 이 세상의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 중에 어떤 여자를, 어떤 남자를, 다시 보는 순간 당신의 인생이 달라졌지 않은가. 부정적으로 달라졌는지 긍정적으로 달라졌는지는 다 자기 판단이겠지만. 아무튼 아이는 자기 나무를 다시 새로 자세히 보게 된다.
세상의 모든 시작은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을 우린 철학적인 용어로 '이데아'라고 한다. 본다는 뜻이다. 아무튼 아이들이 자기 나무를 다시 자세히 보다 보면 나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어느 날 경수에게 물어 보았다. 경수야 네 나무 보았니? 하고 물었더니, 경수는 "내 나무는요. 마을 앞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문데요 아침에 학교에 오면서 보니까요 느티나무 밑에 할아버지들이 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나무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시냇물 건너에는 들판이 있었는데요, 들판에서는 사람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었어요." 오! 그래 그럼 지금 네가 한말을 글로 써봐라. 그게 글이 된다. 한그루의 나무를 자세히 보면 주위의 사물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교육이란 정답을 가르치고 외워서 하나뿐인 정답을 쓰게 하는 공부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알게 해서 열을 알게 하는 게 교육이고 공부가 아닌가. 한그루의 나무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그리게 하는 그게 종합이고 통합이고 통섭이고 융합이다. 융합이란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작용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제 그런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융합 위에 예술적인 융합을 더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그루의 나무를 자세히 보게 해야 그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무엇인지 알게 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그것이 내 것이 된다. 지식이 내 것이 될 때 비로소 인간을 귀하게 가꾸는 인격이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이 인격이 될 때 비로소 나와 세상과 관계가 맺어진다.
관계는 갈등을 불러 온다. 사람들은 갈등을 조정하고 조절하여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보면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 생각을 정리 하는 게 삶이고 예술이고 정치고 교육이다. 이런 철학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 간다. 새로운 것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새로움이 예술적일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 감동은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교육의 힘이다.
감동하는 것들은 생명력이 있다. 생명력이 있는 것들은 자연에 있다. 한그루의 나무를 언제 보아도 완성되어 있고, 언제 보아도 새롭다. 수 천 년이 흘러도 오늘 새로워 보이는 그림, 시, 음악 그게 명품이다. 왜 한그루의 나무는 언제 보아도 완성되어 있고 언제 보아도 새로울까. 그것은 나무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기 때문이다. 예술은 딴 데 있지 않다. 그대 곁에 있는 나무 한그루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그 나무에서 새로 일어나는 일에 감동하는 일상, 그게 삶이 곧 예술인 '삶의 예술'이다.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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