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피자, 그것도 신선하고 향기로운 버섯 토핑이 가득 올라간 따끈한 피자 한 판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것도 한참 출출한 휴일 오후에 말이다.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이 올린 소극장 오페라 '버섯피자'(18~20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의 맛은 어땠을까.
이름도 낯설고 어려운 미국 작곡가 시모어 바랍의 '버섯피자'는 맛있는, 그래서 식감과 오감을 행복하게 해주는 피자가 아니라 치정과 연관된, 먹으면 죽는 독버섯 피자였다.
라깡의 '주이상스'(jouissance)란 말이 있다. 욕망의 법칙은 간절한 만큼 충족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분칠된 욕망은 근본적으로 결핍이어서 계속되는 반복 충동인 것이다. 언제나 허기진 사랑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대상을 쫓는다. 1시간 짜리 오페라는 주이상스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요즘 TV 드라마의 단골 주제인 불륜의 현장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난다. 만남, 사랑, 배신, 질투, 증오, 연속적인 살인에 이르기까지 금단의 과일처럼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사랑은 결과적으로 출연하는 4명이 모두 다 죽는 걸로 끝이 난다. 당연히 무겁고 음침해야 할 비극이다. 그런데 결론이 황당하다. '19禁'인데도 엄마들은 데리고 온 어린아이와 같이 박장대소한다. 불륜을 다루면서도 음침하지 않고 연속적인 살인이 일어나는데도 사람들은 깔깔거린다.
마지막 장면이 압권. 모두 다 죽었던 사람들이 죄다 일어나 "잘 되거나 못 되어도 인생은 운명의 장난"이란다. 이들이 입을 모아 합창하는 운명에는 어떤 비장함이나 억울함도 없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더 웃게 만드는 대미일 뿐이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해간다. 요즘 사람들은 무겁거나 교훈적이거나 어려운 것을 싫어한다. 모든 게 '퍼니 퍼니'(funny funny), 이제는 어렵고 지루한 오페라조차도 웃고 즐기는 볼거리로 바꿔놓는다. 이 대세를 호남오페라단도 타고 갈 모양이다. '버섯피자'의 이면은 청중은 즐겁지만 가수들에게는 딱 '죽을 맛'이다.
전방위로 도전을 주는 성악적 요구뿐만 아니라 코믹한 연기력이 이 오페라의 성패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내가 본 공연에서 가수들이 정말 잘 해주었다. 저렇게까지 지휘자, 연출자의 노고가 얼마나 컸으랴. 그들의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다행히 '버섯피자'는 상설무대에서 장기 공연을 한다고 하니, 보지 않은 많은 분들은 꼭 한 번 보시라 권하고 싶다. / 작곡가 지성호
△ 작곡가 지성호씨는 지역적 소재로 국악과 양약을 아우르는 대작들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한국 창작 오페라 대표 작곡가 10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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