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물목 수량 상세한 기록 첫 사례…중앙과 지방 교섭양상 뚜렷
18책으로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중 무주의 전통문화를 상론할 수 있는 자료가 제16책에 나온다. 바로 무주 교방청에 대한 기록이다.
무주교방청은 6칸 규모로 183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46년에 재건하였으나 33년 후인 1879년 홍수로 말미암아 크게 파손되었다. 이 기관에는 20명의 기생과 12명의 수급, 그리고 7명의 악공이 있었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교방청에 존재하였던 악기와 물목의 수량이 타 기록과 달리 상세하다는 점이다. 교방의 가무악은 다른 지방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교방에서 쓰이던 물목과 그 수량을 기록한 예는 현재까지 무주부가 처음이란 점에서도 이 책의 의의는 더욱 크다.
『호남읍지』에서 무주교방청의 공고에 소장된 물목을 통해 이곳에서는 포구락, 고무, 선유락, 검무, 승무, 헌선도 등 6종의 춤과 이에 수반된 반주, 그리고 물목이 존재해 상당히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궁중무용이었던 포구락과 선유락 등이 지방 교방에서 연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중앙과 지방간의 교섭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난다.
당시 전라도는 일본사신을 접대하는 행로에 일부 포함되지만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와 같이 많은 사행로의 양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무주부에 교방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것은 지금의 전통문화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통치 체제인 부목군현 위상으로 볼 때 무주부가 큰 도시에 해당돼 교방이 설치되고 운영됐던 것으로 보인다.
무주에서 연행되었던 수많은 춤과 음악은 무주의 화려했던 과거를 복원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따라서 현재 무주군에 교방청을 복원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무주의 전통예술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무주부의 교방청에 관한 자료는 19세기 후반 전통예술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자료란 점에서 호남읍지는 전북의 전통음악과 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이기도 하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무주부의 화려했던 교방청의 운영은 무주 전통문화의 넒이와 깊이를 확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바로 『호남읍지』에 소개된 무주교방청의 춤사위는 화려하게 기품 있는 춤사위와 지금도 연행되는 전통적인 춤 문화란 점에서 문화의 사각지대로 평가되고 있는 무주의 전통문화를 새롭게 부활시킬 수 있는 좋은 고문헌이 되는 셈이다.
/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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