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큰 학자 일재(一齋) 이항(李恒) 연구'… 김익두 교수 서평
우리나라 전통 사상의 큰 맥은 '풍월도' 등을 근간으로 하는 토착사상의 맥과 유불선을 근간으로 외래사상의 맥이 부단한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이뤄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 외래사상 쪽의 유교 사상사는 크게 퇴계 이황의 '이기 이원론'과 율곡 이이의 '기 일원론'으로 대별 돼 형성되어 왔다. 물론, 이러한 말은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언급이다.
그런데 우리 고장 정읍에서 이 두 사상사적 줄기를 하나로 아우르는 새로운 사상 곧 '이기 일물설(理氣一物說)', 즉 이와 기는 하나의 사물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혁신적이고 탁월한 사상을 구축한 분이 있었다. 바로 일재 이항이다.
이러한 사상은 서양의 사상사 혹은 철학사로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비견될 만하다. 즉, 서양의 사상사
철학사의 주류가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되어 플라톤에 이르러 그 형이상학적 체계가 수립됐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비로소 그것의 형이하학 곧 존재론적 기초가 확립됐다.
유교 사상사의 맥락에서 보면, 한국 사상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로 일재 이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와 기가 한 몸에 있으니, 그것을 어찌 이물(二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이와 기는 상하의 나눔은 있으나 서로 원활하게 융통하고 있어 끝없이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기가 서로 나뉘면 거기에는 사물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기대승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러한 일재의 말은 그의 사상의 핵심을 가장 쉽고도 분명하게 천명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동안 '이기 이원론(퇴계)'과 '기 일원론(율곡)'으로 양분되어온 형이상학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하나로 융합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사상사에 진정한 존재론을 수립한 위대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동안 학계에서 별로 주목받지 않아, 거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시피 했다.
물론 그동안 한 두 차례 소규모 학술대회는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4월에 정읍시에서 '호남의 큰 학자 일재 이항의 학문과 사상'이라는 큰 학술대회가 열림으로써, 그에 대한 좀 더 본격적인 학문적 접근이 시작됐다. 학문적 활성화 작업은 지난 5월에 '호남의 큰 학자 일제 이항 연구'(황의동 외·도서출판 돈사서)라는 연구서로 종합 돼 출간됐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그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전체적·종합적인 논의로 구성 돼 있다. 기조논문, 1부 생애사적 탐구, 2부 역사적 탐구, 3부 철학적 탐구, 4부 문학적 탐구, 5부 영향사적 탐구 등이 그것이다. 지역 출판사인 '도서출판 돈사서'가 이 책을 낸 것도 바람직하다.
일부 혹자들은 영남은 학문이 발달했고 호남은 예술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언은 그 실상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선입견일 뿐이다. 사상이 없는 예술이 어디 있으며, 훌륭한 사상이 탁월한 예술과 연결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번에 나온 '호남의 큰 학자 일제 이항 연구'는 일재 이항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상가이며, 그의 '이기 일물설'이 호남 및 우리나라 전체의 사상과 예술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되짚어볼 좋은 기회다. 일독을 권한다. /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
△ 김익두 교수는 전북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제2회 '객석' 예술평론상(1991), 제3회 판소리 학술상(2003), 제3회 노정 학술상(2003) 등을 수상했으며, 우리의 전통 소리에도 조예가 깊어 '전북의 민요','전북의 노동요', '위도 띠뱃놀이' 등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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