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은 1410년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에 소실되었던 것을 1614년 중수했으며 1991년 사적 제 339호로 지정해 보호하는, 전주문화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전주 경기전으로 어진이 이안될 때 웅장한 행렬이 연출되었다. 이는 조선왕실의 위엄을 나타내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의미하는 한편, 조선시대 모든 예술영역이 한 덩어리가 되어 극적 모습 또한 보여준다. 예컨대 화려한 의장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평민들에게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의례였던 것이다.
이러한 어진 봉안행렬에는 시각적 효과와 함께 청각적인 상징을 가지고 있는 음악행렬도가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어진봉안 때 등장하는 고취악이다. 얼마 전 프랑스로부터 영구 기증받은 반차도에서도 화려한 복색을 갖춘 고취악대가 등장했다.
경기전으로 봉안되는 어진행렬 때 펼쳐지는 고취악대는 웅장한 악기를 중심으로 어진의 위엄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청각적인 상징을 가지고 있는 고취악기는 통치자의 절대적 위치를 부각시키며, 매우 용감하고 전투적인 음향으로 행렬의 위풍과 사기를 높여준다.
경기전 태조어진 이안행차 시 구성원인 전부고취와 후부고취의 규모는 그 의장의 규모를 염두에 둔다면 대단히 웅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영정모사도감의궤』 등의 반차도에는 서울에서 전주로 향하는 고취악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경기전의』을 보면, 신연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취타를 선두로 신연의 왼쪽 앞으로는 주장고, 비파, 취거가 있다.
또 신연 앞쪽에는 고취가 배치되었는데 고취는 가늘고 긴 북, 비파, 쌍피리, 취거 1쌍, 거문고 1쌍, 피리 1쌍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신연의 오른쪽으로는 악무고 즉, 음악과 춤, 북이 어우러지고 있었으며, 지금의 해금인 행금연주와 취적이 배치되었고, 그 뒤를 취타가 또다시 따르는 형태다.
『경기전의』에 나타난 음악형태는 거문고 등의 현악기도 등장하지만 취타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취타는 고대로부터 군영음악으로서 사용되어 왔으며, 역대 임금이나, 관직이 높은 사람이 이동할 때 불고 때리는 연주형태를 가진 타악기 중심의 행악이다.
이처럼 어진 봉안행렬에는 우리의 뛰어난 문화유산이 담겨져 있지만 지금은 단절된 상태다.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추구하는 전주시가 어진음악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소중한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897년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책을 1906년 필사한 것이 지금의 『경기전의』다. /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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