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서 가훈 써주며 '서예 대중화' 시도
청곡 임만주 선생(72)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훈 할아버지'로 통한다. 명절과 비오는 날을 제외하면 1년 365일(명절 제외) 전주 한옥마을 은행로 사거리로 가방 꾸러미를 들고 출근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썼던 관(冠)'정자관'(程子冠)을 쓰고 한복에 하얀 고무신까지 차려입은 모습이 꼭 서당 훈장 같다.
지난 7일 오후 1시, 선생은 어김없이 한옥마을로 나왔다. 무더위에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글로 더위를 이겨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간 써왔던 작품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행차했다. 비치파라솔 세운 뒤 뒤에 쳐둔 빨랫줄에 그간 써온 작품을 걸고, 글씨 쓰는 데 필요한 벼루·먹·화선지·붓 등과 함께 열 댓가지 가훈(家訓) 샘플을 내놓는다.
"전주가 전통문화중심도시라고 하는데, 한옥마을에 전통적인 게 별로 없잖아. 어떻게 알고 전주시가 아트마켓 작가로 나를 선정했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매일 나오는 거여."
다른 작가들은 관람객들이 북적이는 주말에만 나오는 반면, 선생은 날씨만 좋으면 무조건 나온다. 물론 요즘 같은 성수기를 제외하면 평일엔 파리 날리는 일이 다반사. 그렇다 해도 이곳에 나와 매일 글씨를 쓴다. 한 달에 먹을 세 개나 쓸 정도로 쉼 없이 매진 중.
"아버지가 서당 훈장이셨거든. 7살 때 서예를 배웠지. 근데 평생 돈도 안 되는 글씨만 쓴다고 마누라나 새끼들이 안 좋아했어. 그래도 나이 들고 보니, 서예야말로 나를 살린 일이 아닌가 싶어."
스승 없이 글을 혼자 깨치다 보니 세간의 관심은 받지 못했으나, 평생 사명감을 갖고 해온 일. 지난해 한옥마을에 나오면서부터 작업이 더 즐거워졌다. 작업실에 갇힌 작가들이 대중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서예의 대중화에 한계를 보였지만, 작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가훈 써주기를 오히려 열심히 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보람도 느끼게 된 것. 선생은 "고고한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어려운 서예 대신 한글을 병용하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특히 가정이 붕괴되는 현대사회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깨치도록 하는 가훈 써주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개가 부귀영화, 소원 성취하는 문구를 써달라고 해. 결국 건강하고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건데 서로 너무 비슷하잖아. 그래서 샘플을 만들었지. 많이 추천해주는 건 '기산심해(氣山心海). 기운은 산과 같이 높고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어지라는 거지. 부모·부부·자식하고 맨날 다투면 쓰겠어? 이 글씨 써주면 다 좋아해."
이처럼 선생을 신기하게 보는 외국인 혹은 관광객들이 가훈을 써달라고 오면, 만원을 받는다. '공짜'로 해주면, 귀한 줄 모르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기분이 내키면 무료로 써주고, 전주예총의 전주예술상 시상식처럼 문화예술계 공을 세운 이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선뜻 내주기도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작업하는 이들에 대한 이신전심(以心傳心) 때문이다.
창암 이삼만 선생 추모 전국 서화대전 입선·특선, 전국 서화 백일장 대상전 20여 차례 특선 등 수십여 차례 수상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도전을 멈출 줄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지론 덕분에 초서에 있어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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