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탄생 300년을 맞아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곽동석)이 연 '호생관 최북(崔北)'(1712~1786)은 안팎의 가장 많은 호평을 받은 전시다. 최북이 남긴 유작 100여 점(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에서 최대 180여 점(이원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까지 1/3 이상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국내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값진 성과였다. 관람객은 앞서 열린 '최석환과 포도 그림전' 보다 1만여 명이 늘어난 3만2000여 명이 다녀갔다. 그림을 그려 달라 강요 받자 제 눈을 찌른 '조선의 고흐'라는 '입소문'도 한 몫 했다.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이흥재) 역시 주말마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상반기 관람객은 총 11만 3146명. 전국 시·도립미술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뿐더러 상반기에만 10만 명 이상 방문한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부산시립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특히 '채용신과 한국의 초상미술'의 호평은 내부가 아닌 외부 기획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다소 빛이 바랬지만, 질투날 만큼 좋은 전시였다는 점에선 안팎의 이견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전시를 해도, 홍보를 해도 관람객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던 국립전주박물관·전북도립미술관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비결이 뭘까. 접근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승부수로 전북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하는 뛰어난 기획력과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내건 결과다. 전시와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은 정부의 문화 관람자에서 주최자로 거듭나게 하는 '문화복지'의 지향점과도 통한다.
하지만 모든 박물관·미술관이 '체질 개선'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도내 국공립박물관(14곳), 대학 박물관(6곳), 사립박물관(6곳) 등 박물관·미술관이 각각 27곳·5곳으로 눈에 띄게 늘어났으나, 운영 면에선 신통치 않은 곳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는 '문화 불모지'에 가까웠던 지역에서 특성화된 박물관들을 건립해 시민들의 문화 욕구를 채워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문화 소외 지역인 시·군 주민들의 문화 향수권을 확보하는 '보편적 복지'에 가깝고, 주민들이 문화를 직접 향유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문화복지'로 거듭나려면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과제로 놓여 있다.
비췻빛 청자 모양의 건물로 선보인 부안청자박물관은 부안 청자 진품 및 도편과 함께 그 역사와 제작 과정을 감상·체험케 하는 곳이다. 고려 시대 제작된 강진 청자의 선점으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부안 청자는 12세기 초 태동해 왜구가 출몰하던 13세기 말까지 번성했다. 가격만 수십억 대로 추정되는 명품실 등에 있는 30여 점의 고려청자 전시와 물레로 자신만의 자기를 빚는 도자기 체험 등이 역점 사업. 하반기 관련 조례가 통과되면 창작 스튜디오가 마련 돼 작가들이 거주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운영하는 어진박물관 역시 올해 국보로 승격된 태조어진 봉안 6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특성화된 박물관에 가깝다. 지난달부터 전주 경기전이 유료화되면서 마련된 수문장 체험, 왕실 의상 입어보기, 탁본·실록 문양 제작·인쇄 등 예상외의 선전과 400년 만에 재현된 조선실록의 편찬·실록 복본화 전시 등이 기록문화의 가치를 일깨운다.
2009년 익산 미륵사지석탑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된 뒤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의 경우 토요문화강좌, 역사문화강좌, 여름문화학교를,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역시 박물관 어린이학교, 한국사교실, 박물관 공예 체험, 한국사 연대표 특강 등을 통해 관람객 문턱을 낮추기 위한 프로그램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특성화된 공간으로 건립된 무주곤충박물관이나 순창장류박물관, 고창판소리박물관은 시민들의 발길을 붙들 체험은 아예 없거나 부족한 편이다.
산수화에선 독보적 입지를 자랑했던 벽천 나상목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김제 벽천미술관은 벽골제아리랑문학관사업소 관할로 기증품전이 주를 이루며, 지난달 문을 연 김환태문학관과 함께 문을 연 최북미술관 역시 주민들과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려면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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