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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실존, 그리고 희망의 미학…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살기위해 몸부림 치는 재개발 철거민들 통해 자본주의 폭력성 고발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여기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로 시작하는 한 편의 소설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꼭."으로 끝나는 그것은 1976년에 발표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성과 힘 펴냄·이하 난쏘공)이다. 이 소설은 제목이 말해 주듯, 난장이라는 기형의 육체 위에 쓰인 이야기이다. 더구나 12편의 연작소설로 묶여 1978년에 완간된 '난쏘공'은 난장이 개인을 넘어 난장이 일가(一家) 혹은 난장이 집단의 노동과 실존을 위한 일그러진 육체의 계보학이다.

 

하지만 이들 일그러진 육체들은 결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단지 거인의 시각에 의해 상대적으로 평가되어 지칭되는 그것은 신체상의 특징 혹은 장애, 하나의 차이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 체계는 이들을 난장이라 '부르며' 난장이라는 낙인, 그 기표를 한 육체 위에 새겨 놓고 타자로 소외시켜 버린다.

 

물론 조세희는 이 난장이의 육체를 주체로 복원시키려고 한다. 재개발 지역 철거민을 둘러싼 도시 노동자의 육체가 실존을 위해 몸부림친 상황, 1970년대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과 폭력을 고발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사회사적 입장이나 계급론적 관점, 민족문학론적 문제 의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 짧은 시적(詩的) 문체 등의 형식 미학적 기법을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판금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던 이 소설이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미시 서사가 자리 잡은 현재에까지도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우리 문단 사상 가장 오래도록 팔린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간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난쏘공'이 바로 조세희 자신의 육체로 쓰인 서사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실제 조세희는 경제적 핍박자들이 몰려 사는 재개발 지역 동네에서, 세입자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다가 철거반과 싸웠다고 한다. 돌아오다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주머니에 넣었고, 난장이 연작은 그 노트에 의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책상 앞에 며칠 밤을 새우고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써 절망에 빠졌던 것도 바로 나였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문학 현장을 육체로 직접 '살아버림'으로써 난장이 육체를 위한 이야기를 '펜'이 아닌 자신의 '육체'로 썼던 것이고, 그 이야기를 다시 '노트'가 아닌 자신의 '육체', 그 곧은 척추와 따뜻한 심장에 새겨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난쏘공'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는 데도 우리의 삶은, 우리의 육체적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조세희는 다시 말하고 있다. 1970년대는 떠올리기도 싫다고 고백했던 그는 요즘의 상황이 그 70년대보다도 더 심하다고 부끄러워한다. 일 년에 1억 원을 호가하는 피부 관리를 받는 눈부신 육체가 있고 무상 급식을 기다리는 절박한 육체가 있으며, 바람 길과 조망권까지 고려하여 개발되는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의 안락한 육체가 있고 도심 난개발로 화염병에 참사당한 용산 세입자 상인 철거민의 참담한 육체가 있음을 볼 때, 거인과 난장이라는 육체의 집단화, 계층화, 세습화 현실이 절망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 절망을 위해 조세희는 '난쏘공'에 두 개의 우화를 숨겨 두었다. 그것은 멸종당한 도도새와 살아남은 개똥벌레 이야기이다. 도도새는 날개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날개가 퇴화되었고, 나중에는 날을 수가 없게 되어 멸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도새보다도 작은 개똥벌레는 "이 세상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개똥벌레를 잡아죽였지"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나는 벌레야"라고 일컫던 난장이 이야기 '난쏘공'에서도 개똥벌레는 살아남아 그 작은 육체에 반짝이는 불을 달고 날아다닌다. 절망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 '난쏘공'이라는 텍스트가 아름답게 살아남은 것은 또한 이것 때문일 것이다.

 

   
▲ 김혜원 시인

△ 김혜원 시인은 201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현재 전북대 국문과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며, 백제예술대 사진과에서 사진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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