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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범 보존과학사 - 가야 철제 투구 원형에 가깝게 복원

손상된 유물 수술하는 '외과의사' "문화재 보존 지원 열악 안타까워"

▲ 이영범 국립전주박물관 보존과학사가 지하에 위치한 보존과학실에서 복원작업 중인 유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 10월, 남원 월산리 고분군 발굴조사가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가야계 투구와 비늘갑옷은 물론 왕이나 상류층 유적에 껴묻혔던 자루솥, 백제 지역에서만 출토됐던 중국제 청자천계호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난 2년에 걸친 출토된 유물의 보존처리에 참여한 이영범 국립전주박물관 보존과학사(38)는 최근 열리고 있는 특별전 '운봉 고원에 묻힌 가야 무사'를 통해 1500년 전 가야 무사가 전하는 운봉 고원의 초대장을 관람객들에게 건넸다.

 

지난 31일 방문한 국립전주박물관 지하에 위치한 보존과학실은 마치 실험실을 방불케 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그의 한쪽 책상엔 화학약품, 현미경, 적외선 분광 분석기 등이 놓여 있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다 나온 유물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각종 과학적인 실험과 연구가 필수죠. '보존과학사'는 손상된 유물을 수술하는 '외과 의사'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부여 출생으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현장 경험을 거친 뒤 2002년부터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근무했다. 도내 유일한 보존과학실로 전북의 중요 유물 대부분은 이곳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이 많아도 보람으로 버틴다. 종일 꼼짝 않고 유물의 보존처리에 매달릴 수 있는 집중력은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같은 유물의 보존처리에도 순서가 있다. 유물의 호적등본을 떼는 격에 가까운 예비조사를 시작하고, 이물질 혹은 녹을 제거한 뒤 화학적으로 부식시킨다. 유물의 손상을 막기 위해 건조시키고, 보호하는 막을 입힌 뒤 본래 상태로 접합시킨 다음 없어진 일부는 복원시켜 전시하거나 수장고에 보관한다.

 

26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 '운봉 고원에 묻힌 가야 무사'에 내놓은 철제 투구 복원을 맡았던 그는 "출토 당시 유물이 폭삭 주저앉은 채로 나와서 참 난감했다"면서 "수습시간이 워낙 짧아서 접합 복원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말안장 꾸미개 복원품처럼 복합재질로 이뤄진 유물은 보존처리가 훨씬 더 까다롭다. 마땅한 보존처리방법을 찾지 못할 경우 보존만 하기도 한다. "연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물을 위해서"다.

 

수장고는 '박물관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심장이 활동에 필요한 혈액을 모았다가 다시 배분해주는 것처럼 모든 유물들은 일단 수장고에 들어갔다가 전시실로 옮겨져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다시 수장고로 들어온다. 수장고의 적정 온도와 습도는 평균 ±20도, 습도는 ±50%. 수장고 온도는 너무 높거나 낮아도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건 습도 유지다.

 

"습도가 너무 낮으면 유물에 포함된 수분이 빠져나가 뒤틀리거나 갈라져 손상이 일어나고요, 반대로 습도가 필요 이상으로 높으면 곰팡이균 등과 같은 미생물 번식이 활발해져 금속유물들이 부식되거나 색깔이 변하게 됩니다."

 

국내에서 200여 명 안팎에 불과하던 보존과학사는 최근 문화재 보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

 

그러나 보존처리는 누구나 하고 싶다고 다 할 수는 있는 분야는 아니다. 그는 사소한 실수로 역사의 큰 오명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어야 한다"면서 "유적·유물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인내심이 필수"라고 했다. 어떤 유물의 보존처리는 2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보존하고 보수하는 일은 결코 한가한 일도, 작은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유물의 보존 관리에 대한 투자나 지원은 아직 열악하죠. 문화 선진국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작업을 충실히 할 때 현재의 우리가 보이고, 미래의 우리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 보존처리에 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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