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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우리들

기획사업국장겸 논설위원

전북양궁훈련장을 찾은 1일 오후 땡볕은 내내 꺾일 줄 몰랐다. 폭염의 기세가 전주종합경기장 뒤편 훈련장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한낮 매미소리들은 런던올림픽 경기장의 함성처럼 우렁찼다. 올림픽에서 거푸 기적 같은 드라마를 엮어낸 곳,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전북 양궁의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데 현장은 부끄럽고 창피했다. 선수들이 용케 견뎌 낸 것이다. 그 땀과 눈물이 고마울 뿐이다. 메달을 딸 때마다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우리는 메달만 기다리는 철없는 존재로 여겨져 빚진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전북이 배출한 궁사들이 고맙다. 박성현(31·전북도청 감독)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낚아 고장의 명예를 세계에 올려놓았다. 4년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추가해 기염을 내뿜었다. 이성진(27·전북도청)은 아테네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수확하고 이번엔 단체전에서 금빛 활시위를 당겼다.

 

또 이번 대회에서 고창 출신의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단체전과 개인전의 금메달을 거머쥐고, 전주출신 최현주(28·창원시청)도 단체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 여자양궁 7연패의 주역들이다.

 

전북에선 1998년에야 도청 양궁팀이 생겼다. 경이적인 발전 속도다.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아끼지 않은 지도자들의 노력과 세계 최강권인 선수들의 조력이 만들어낸 금자탑이다. 이변 가능성을 높이자는 시각이 있지만 메달행진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양궁계에서는 "전북 양궁에도 위험 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훈련장에서 만난 전북양궁협회 강만수 전무는 "공인 양궁장 하나 없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대회결과들이 신기할 정도라는 것이다. 도내 선수가 100여명에 이르고 2개 실업팀이 있지만 합동훈련은 그만두고 시뮬레이션 경기는 엄두조차 못내는 상황이다.

 

이들 선수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훈련장은 무허가 건물에다 장소도 협소해 전북이 '양궁의 메카'란 명성에 맞지 않는다. 작은(3703㎡) 훈련장은 국제대회 과녁거리가 나오지 않고 표적판간 거리도 좁아 훈련이나 대회를 제대로 치를 수 없다. 허름한 건물(183.6㎡)도 비가 오면 피해 다녀야 하고, 활 쏘는 사대(射臺)와도 바짝 붙어 그곳이 전북양궁의 산실이란 사실을 의심케 했다.

 

그뿐 아니다. 활터가 큰 도로와 벽을 나누고 있지만 키 작은 나무 울타리만 심어져 보행인들이 안전 위협에 노출돼 있다. 그나마 이 시설도 종합경기장 재개발에 맞물려 얼마 있지 않으면 내줘야 한다.

 

전용 양궁장 건설이 더 이상 늦어져선 안 된다. 열악한 훈련환경이 연장되는 건 관계당국의 방관자적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숙원사업으로 제기됐지만 반짝 관심에 머물렀다. 경북 예천군의 '김진호 양궁장'과 충북 청주시의 '김수녕 양궁장'이 국제적 규모로 세워져 굵직한 대회를 유치하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전북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U대회를 석권하면서 그랜드 슬램(grand slam)을 달성한 세계적인 명궁 박성현이 태어난 곳이다. 그의 이름을 붙여 양궁장을 지어줘야 한다.

 

양궁은 저변이 약하고 환경이 초라해도 정말 잘 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여간해서 이 지역을 '불모지'라 생각한 적이 없다. 금메달을 따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의아하게 볼 정도였다.

 

하지만 여궁사의 가냘픈 어깨에만 짐을 지워 양궁의 위업과 전설을 이어갈 수는 없다. 박수치고 좋아했던 것으로 끝낼 수 없다. 언제까지 불모지에서 꽃을 피울 것인가. 우리도 빚을 갚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최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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