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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농촌에 피는 문화예술 - 완주 삼례 비비정마을 사례

동네 할머니 합창단에 밴드도 결성 - 마을과 사람의 재발견…공동체, 예술이 되다

   
▲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 마을 주민들은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문화예술의 씨를 뿌리면서 삶의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데 문화예술이 가당키나 혀"

 

농촌에서 문화예술은 여전히 사치스러운 대상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공연장·도서관·박물관 등 문화시설들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루어졌어도 실제 활용도는 높지 못한 게 현실이다. 문화바우처 사업 등 소외 계층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 온기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의 삶과 괴리가 있는 정책에다 주민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태세가 갖춰지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런 점에서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 마을의 사례는 농촌에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씨를 뿌리고 성장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를 시사해준다.

 

△예술가가 따로 있나요

 

비비정 마을은 전주에서 삼례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해 있다. 삼례대교를 사이에 두고 전주에 인접해 있지만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만경강이 흐르고, 완산 8경으로 일컬어질 만큼 낙조의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100년 역사의 삼례 양수장이 있고, 호산서원 등의 문화자원이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3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농촌 마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마을 공동체 의식조차 엷어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기에 아주 척박한 마을이었다. 이런 여건 속에 문화예술의 씨를 뿌린 게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이었다.

 

'비비힐 프로젝트'가 전국 6개 지역과 함께 농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 비비정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녹색체험마을 등 정부의 각종 마을사업들이 소비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생산자들이 향유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마을을 가꾸고, 도시 사람들에게 식자재를 공급하는 생산기지의 역할에 그쳤습니다."

 

프로젝트 기본계획에 참여했던 희망제작소 '심심'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이 마을로 귀농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사)비비정 소영식 사무국장(37).

 

"농촌의 근본은 토지를 기반으로 한 생산에 있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생산 자체가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생산의 흐름에 맞춰 농악도 하고 기원도 했습니다. 도시처럼 돈 버는 것 따로, 노는 것 따로가 아니라는 말이죠."

 

소국장은 그런 농촌의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과거의 문화들을 거의 잃게 됐다고 진단하고, 새로운 문화를 입히는 것이 아닌, 농촌과 주민들의 옛 문화를 되살리는 데서 실마리를 찾았다.

 

마을 주민은 70여명으로, 그중 90% 이상이 여성 노인들. 이들의 이야기가 곧 만경강의 역사요, 이들의 삶이 우리의 문화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주민들의 재능과 끼는 2010년 6월에 열린 '예술 농활'에 발휘됐다.'별천지'라는 이름을 건 예술농활에 서울특별시립 청소년미디어센터에서 활동하는 예술인과 청소년 등 50여명을 포함해 100여명이 참여했다. 주민들이 내놓은 빈 방과 12동의 천막에서 지내며 5박6일간 이루어진 이들의 예술농활은 주민들에게 '사건'이었다.

 

어머니들이 말하는 강과 텃밭 이야기가 생태문화였으며, 어머니들이 만든 음식은 그 자체 문화적 재능이었다. 평생을 농작물과 함께 해온 어머니들이 그린 고추와 호박 그림은 예술가가 따로 없었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야기와 재능에 청소년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마을 어머니들도 신명이 났다.

 

농활을 마친 후 그 결실이 마을축제로 이어졌다.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다큐로 제작되고, 연극무대에 올려졌다. 어머니가 그린 그림과 어머니들의 일상의 활동들을 담은 사진들로 전시장이 꾸며졌다. 평생 지긋지긋하게 여겼던 일상의 삶들이 예술로 승화되면서 어머니들 스스로 새삼 예뻐 보이고 애정이 갔다.

 

△요리 재능 살려 마을 레스토랑 준비

 

마을축제를 계기로 주민들이 예술활동의 대상이 아닌, 주인공이 되면서 작물이 자라듯 공동체 의식도 부쩍 성장했다. 부수적으로 500만원의 마을 기금이 생기면서 공동체 사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마을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한 것이 여성 합창단과 남성 밴드의 결성이다. 평소 노래에 끼가 있는 10명 안팎의 마을 할머니들이 뭉쳐 만든'건달시스터즈'는 지난해 완주와일드푸드축제 '끼'한마당대회 대상을 거머쥐었다. 농촌마을에 밴드가 있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박삼문 마을 이장 등 5명으로 구성된'화백밴드'(화려한 백수의 준말이라고)는 기타와 드럼, 아코디언 연주자들로 구성됐다. 매주 1~2차례 마을회관 등에서 주민들과 어울리는 이들 합창단과 밴드가 주민들의 화합과 친목에 윤활유 역할을 한단다.

 

마을에 건설중인 공연장이 완성되면 좀 더 체계적인 연습과 공연이 가능할 것으로 박사문 이장은 기대했다.

 

현재 마을 주민들이 무엇보다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게 '마을 레스토랑'과 카페테리아 개장이다. 오는 10월 하순 개장 예정인 마을 레스토랑은 도시의 음식점과 달리'어머니의 손맛'을 맛볼 수 있는 메뉴로 꾸려진다. 카페테리아 역시 식혜와 전통 음료 등으로 차별화 할 계획이다. 식자재 생산과 마을의 문화, 비즈니스가 합쳐진 공간이 되는 셈이다. 주민들은 자신의 재능이 수익이 될 수 있는 점에서 자부심 또한 크다.

 

그러나 비비정 마을에 뿌려지고 있는 '문화예술의 꽃'이 어떻게 만개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이라는 프로젝트가 있고, 정부와 자치단체의 재정이 투입되는 곳이어서 농촌마을로 일반화 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중요한 점은 마을과 주민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자원을 얼마만큼 잘 활용하고, 주민들 스스로 만족스럽게 향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 같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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