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영환씨가 SBS 드라마 '신의'의 감상 매뉴얼 격으로 제작한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 작품 중 긴 흰 수염과 휘날리는 도포자락의 '화타' 캐릭터. | ||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 작가 탁영환(43)씨의 작업실(전주시 효자동)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지난 두달간 회전도 안 되는 선풍기 두 대에 의지해 두문불출했던 작가는 땀을 많이 흘린 덕분인지 홀쭉해졌다.
"가장 더울 때 (작업을) 시작해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13일 첫 방영되는 SBS 드라마 '신의'(神醫·연출 김종학 작가 송진아)를 요약한 감상 매뉴얼에 가까운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주인공이 바로 탁씨다. 그가 처음 명명한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은 전통 수묵화에 디지털 기기로 연기(Smoke)를 합성시킨 장면 장면을 연속 촬영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제작진으로부터 갑작스레 제안을 받은 그는 드라마가 자신이 추구하는 작업의 결과 비슷했고 드라마 영상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호기심까지 발동해 6월부터 부랴부랴 시작해 8월 가까스로 마쳤다.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기 보다는, 제작진이 기획한 의도에 맞춰 내놓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제작자 요구를 충실하게 반영하되 내 작업의 색깔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드라마는 "피습을 당한 노국공주(박세영 역)를 구하기 위해 공민왕의 호위무사 최영 장군(이민호 역)이 '타임슬립'(Time slip·시간여행)을 통해 전설의 명의'화타', 성형외과 전문의 전은수(김희선 역)를 데려가면서 싹트는 로맨스와 진정한 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작업은 대략 5단계를 거쳤다. 드로잉, 수묵화로 그린 원화를 움직이는 그림으로 만들기, 그림을 카메라로 찍기, 파일을 컴퓨터에 입력한 뒤 보정하기, 편집하기로 이어진다. 그간 해왔던 작업이 인물이 아닌 풍광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인물에 이야기를 입히는 전혀 새로운 방식.
원화로 들어갈 수묵화만 1000장을 넘게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끼고 살았던 만화책이 커다란 도움이 됐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그러나 아주 가볍지도 않게. 이 양단의 줄타기는 디테일로 완성시켰다.
"'화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같지 않아요? 마치 신선처럼. 제 영상에선 엄청 긴 흰 수염에 발이 안 보이도록 하는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캐릭터로 연출했죠. '조조'는 종종 야비한 캐릭터를 떠올리잖아요. 수염을 다소 짧게 표현해 냉철하고 똑똑한 모습으로 보이도록 했습니다."
고르고 고른 장면이 50컷이나 들어갔으나, 시간은 2분40초 안팎에 불과했다. 평소 느린 작업에 익숙했던 그는 빠른 전개와 장면 전환에 특히 신경 썼다고 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그는 8년 전의 자신과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 했다. 일본 도쿄 디자이너스 가퀸에서 애니메이션,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영상연구과 예술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전주에 와서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을 한다고 했을 땐 모두들 그의 작업에 시큰둥했다. 하긴 작가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작업이 커지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소 심오하지만 꽤 유머러스한 삶의 철학을 담은 그의 최종 풍경이 앞으로 어떤 빛깔과 무늬를 띠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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