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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성경제인협회 초대 회장 지낸 노군자 장등석재 대표 "여성이 경영하는 기업에 일감·판로 적극 지원해야"

여성들이 기업하기 좋은 여건 만드는데 초석 닦아 보람 / 암·교통사고 등 죽을 고비 3번 넘기고 파산 상황도 극복 / 열정·끈기 등 어머니의 힘으로 도전하면 안 될 일 없어

   
▲ 노군자 장등석재 대표가 사무실에서 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부 창립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커다란 원석을 자르는 요란한 절삭기계 소리와 차바퀴에 날리는 돌가루를 비집고 익산 석재단지 내에 있는 장등석재를 찾았다. 대표적 3D업종으로 남자들도 감당하기 힘든 석재업종이기에 이런 석재회사를 경영하는 대표는 보통 여장부가 아닐 것이란 선입견이 앞섰다. 하지만 단아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 준 노군자 장등석재 대표(魯君子·70)를 보는 순간, 올해로 고희(古稀)라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갑작스런 암 선고와 투병생활로 교직을 떠난 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자신도 장애를 입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석재회사를 떠맡아 전국 최대 석재업체로 키운 노 대표는 진짜 여장부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3차례나 다시 일어섰고 IMF 당시 파산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회생시켰으며 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부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던 노군자 대표를 익산 낭산면에 있는 장등석재 사무실에서 만났다.

 

- 올해 고희(古稀)이신데도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데요, 사람들이 직접 뵈면 놀라지 않는가요.

 

"잘 봐주셔서 그렇죠. 학교에 있을 때는 목소리가 좋다고 해서 교내방송을 도맡아 했었어요. 요즘도 사무실 전화를 직접 받으면 사람들이 여직원인줄 알아요. 목소리 덕분에 어느 정도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됩니다."

 

- 29년간 교직에 계셨는데 왜 그만두셨는지요.

 

"1990년도에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전주예수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았죠.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너무 좋아서 처음에는 학교에 복직하려고 대체교사를 썼는데 투병생활이 길어지면서 사직을 했습니다."

 

- 남자들도 힘든 석재사업에는 어떻게 발길을 들여놓았는가요.

 

"퇴직 후 집에 있으려니 우울증이 올 것 같아서 남편 회사에 나가 이것 저것 도와주었죠. 그런데 1994년 1월 25일이예요.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버스가 와서 우리 차를 들이받았어요. 이 사고로 남편은 현장에서 숨지고 저는 얼굴이 찢겨져 뼈가 드러나고 팔과 다리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지금도 오른손을 잘 못쓰는데 그 때 입은 장애 때문입니다. 석달간 투병 끝에 퇴원했는데 당장 가정과 회사를 추스러야 하기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 때부터 회사를 맡았죠."

 

- 갑자기 석재업을 맡으신데다 회사경영에 대한 경험도 없었는데 처음에 사업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물론 힘들었죠. 업종 자체가 거칠고 험한데다 사람들도 억세고 특히 여성에 대해선 굉장히 배타적이예요. 그래서 몸뻬 바지 20벌과 장화를 구입해서 현장을 돌며 공부했습니다. 직원들이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렇지만 허드렛일을 내가 직접하고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피면서 본인과 가족들 생일도 챙겨주고 하니까 조금씩 마음을 열더라구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됐습니다."

 

- 여자로서 석재업을 감당하기에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사업수주 활동이나 거래처, 대인관계 등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암과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2번이나 넘기고 평생 의지하고 살았던 남편까지 보내고 나니 처음에는 제가 처한 상황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통해 물려받은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사람들 앞에선 웃음을 잃지 않고 밝고 명랑하게 대했죠. 그랬더니 거래처 사람들마다 '장등석재에 전화하면 너무 좋다'면서 환대해주는 거예요. 무엇보다 큰 힘은 남편이 익산석재조합이사장을 하면서 쌓았던 인간관계와 신용이 큰 도움이 되었죠. 석재조합과 발주처 거래처 등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줘서 회사가 빨리 정상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 (차를 권하는) 손을 보니까 (거칠고 투박한 것이) 마치 남자 손 같은데요.

 

"작업 중에 돌 부스러기가 레일위에 떨어지면 기계고장의 원인이 됩니다. 한번 수리하려면 몇 백만원씩 들어가고 해서 직원들 대신 제가 치우다 기계에 부딪치거나 돌에 맞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다보니 상처투성이죠. 저에겐 고난의 흔적들이죠."

 

- 한 때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다면서요.

 

"1997년 IMF 때 남편과 매우 가깝게 지내시던 분이 석재업에 뛰어들었다가 어려워지니까 제게 어음할인을 부탁했어요. 그게 누적되다보니 수십억원대에 달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분이 회사를 부도내고 미국으로 도피를 했어요. 고스란히 그 피해를 제가 떠안게 됐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기에 장등석재마저 회생불능상태에 빠졌죠. 그래서 죽으려고 못 먹는 술을 몇 대접 마시고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아들이 발견해서 서울 병원으로 후송해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없는데다 빚 독촉은 심해지고 해서 다시 유서를 쓰고 저수지로 갔으나 막상 뛰어 들려니까 세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포기하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전북은행을 찾아갔죠. 지점장님께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하니 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분이 제 생명의 은인이죠."

 

- 그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전국 최대 석재업체로 키우셨다지요.

 

"위기는 기회라고 큰 고비를 넘기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저희 회사는 원래 경계석으로 전국에 명성을 쌓았죠. 대전엑스포에 납품하면서 유명세를 탔기에 빨리 회생할 수 있었죠. 또 품질 향상과 신제품 개발에도 주력해서 Q마크 획득과 ISO인증을 받았고 야광경계석(바이오 솔라스톤 경계석 블라드)으로 특허등록과 실용신안 등록도 했습니다. 호황기 때는 절삭기계만 37대에 40여명의 직원들이 밤낮없이 일을 해도 수주물량을 채우기가 어려울 정도로 잘 됐습니다."

 

- 요즘은 석재산업이 사양길인데요, 어떻게 활로를 찾습니까.

 

"석제품 발주물량 자체가 크게 줄어든데다 원석 구입난으로 원석 값은 치솟고 여기에 값싼 중국산 제품까지 밀려 와 가격 폭락으로 석재업계가 3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 달 매출이 예전의 하루 매출도 안될 정도로 힘겨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제품을 만들수록 손해가 날 정도입니다. 납골묘석이나 조경석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아 어려움이 많습니다."

 

- 지금까지 3차례나 죽을 고비를 이겨내셨다고 들었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직에 있을 때 암 투병을 했었고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가다 큰 사고를 당했으나 저만 기적처럼 살아났고요, 지난해 3월에는 뇌종양으로 서울서 대수술을 받았는데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뇌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자꾸 기억이 없어지고 생각이 잘 안나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들이 사다 준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3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파산상황에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늘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며 감사하며 나누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회사 부지가 산업단지로 편입됨에 따라 현재 이 곳으로 이전하면서 회사 규모를 대폭 줄였습니다. 현재 절삭기계가 7대 있지만 2~3대정도만 가동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는 계속 할 생각입니다."

 

 

- 1999년 7월 창립된 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부의 산파역을 맡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는데 어떻게 여성경제인협회를 설립하게 됐습니까.

 

"여성경제인협회는 법적단체입니다. 1999년 2월 여성기업지원에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경제인협회가 만들어졌어요. 전북지부 설립은 중소기업청의 권유로 제가 주도하게 됐는데 당시에 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여성기업인 명단을 넘겨받아 전화를 넣었는데 IMF 여파로 거의 모든 업체들이 연락이 안 되더군요. 하는 수 없어 택시 한 대를 전세 내서 도내 시·군을 돌며 여성기업인들 참여를 설득했어요. 그렇게해서 7월 19일 열린 창립총회에 모두 50명이 참석했습니다."

 

- 현재 도내 여성기업인 회원수는 얼마나 됩니까.

 

"도내 여성기업인 회사는 대략 300여곳 정도 됩니다. 여성경제인협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회원 수는 100여명 정도 됩니다."

 

- 여성경제인협회에서는 주로 어떤 일들을 하는지요.

 

"저소득 여성가장에 대한 생계형 창업을 지원하고 여성기업의 유망제품 온라인 홍보·마케팅 서비스를 지원하는 한편 제품 판로 개척 및 여성기업의 자생력 제고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또 도내 여성CEO들의 경영혁신포럼을 개최하고 여성CEO들의 전국 경영연수에도 참여하며 여성기업인의 날 행사를 개최해 모범 여성기업인과 여성기업지원 유공자, 여성기업 모범근로자를 선정, 포상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 회장 재임 중인 2001년 전북여성창업보육센터도 문을 열었는데 센터에서는 어떠한 일들을 하는가요.

 

"여성 예비창업기업인이나 창업 초기 여성기업인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재단법인인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로 편입돼서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여성으로서 기업경영에 어려움이 많을 텐데요, 정부나 자치단체 지원은 어떠한지요.

 

"여성경제인협회 출범 초기에는 지원이 미미했지만 지금은 여성기업인에 대한 보조금 지원과 은행 대출, 판매 마케팅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 여성기업인들에 대한 교육과 정보제공 혜택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 여성기업인에 대한 제도적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면.

 

"우선 일거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요즘 경기가 어렵다 보니까 일감이 거의 끊겼어요. 정부나 자치단체의 경기부양 효과도 미미하고…. 또한 여성기업 제품의 판로확보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여기에 리베이트 등 부조리 관행도 사라져야하고 행정과 업체간 유착도 없어져야 공정한 경쟁과 함께 여성기업인도 참여할 수 있겠죠."

 

- 여성경제인협회장을 맡아 활동하시면서 느낀 보람이라면.

 

"당시에는 여성기업에 대한 지원이나 혜택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황무지 같은 척박한 여건에서 사비를 들여가며 협회를 설립하고 여성기업인들이 기업하기 좋은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는 초석을 닦아 놓아 나름대로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기업인들이 사회 참여와 함께 국가와 지역경제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뿌듯하고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어머니의 힘으로, 또한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열정과 용기와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 연말에 송년모임인가요, 여성경제인 회원들이 모두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던데요.

 

"여성기업인들이 회사 일 뿐만 아니라 가정과 자녀양육 등도 챙겨야 하기에 분주한 일상에 묻혀서 살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들도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찾아보자 이런 의미에서 송년모임때 한복도 입고 어느 해는 드레스도 입고 송년 행사를 가져요. 지난해에는 경기가 어려워 쉬었습니다."

 

- 여성기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시간을 내서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입니다. 또 책 속에 지혜가 있고 길이 있거든요. 특히 자기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언행과 처신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말가짐이나 몸가짐 행동가짐을 잘 해야합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는 혼자서 만나지 말고 부득이 술자리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여럿이 함께 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엄마, 직원들로부터 존경받는 CEO가 돼야합니다. 또한 선물공세를 펴는 사람들도 경계해야합니다. 그리고 적을지라도 여유를 내서 베풀고 나누면 삶이 더 풍요롭게 됩니다."

   
▲ 노군자 장등석재 대표와 권순택 선임기자가 석재 절삭기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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