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들려주는 할머니·하천 생태 지키는 할아버지 / 효자문화의집 봉사단 '북북' 책읽어주기 활동 분주 / 퇴직 후 생태문화봉사단 자원, 삼천 지킴이 자처도
어르신의 귀가 쫑긋해지고 시선은 일제히 앞으로 향한다. 밭에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라난 순무를 뽑기 위해 호랑이 돼지 토끼 사슴이 낑낑대고 있다. 할아버지가 뿌린 순무 씨앗이 너무 크게 자라 동물들이 다 모인 것. 러시아 동화책'순무'를 각색한 맛깔난 인형극에 어르신들의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다.
지난달 전주 효사랑가족요양병원에서 선 할머니 연기자들은 전주효자문화의집(관장 강현정)의 책 읽어주는 실버문화봉사단 '북북'(Book-Book) 소속이다. 한국문화복지협의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북북' 봉사단은 4년 째 지역아동센터·노인복지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소외계층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단원은 55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선발한 결과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초청 강사의 발성 연습·책 읽어주는 요령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뒤 매주 두 번 활동 중이다.
강현정 관장은 "어르신들에게는 손자 같은 아이들에게 직접 교육을 할 특별한 기회를, 아이들에게는 친할머니·할아버지 무릎에 누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시간을 선물해줘 두 세대 모두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북북' 봉사단은 아이들에게 율동·노래·게임을 섞어가며 책 속 등장인물 목소리를 각기 달리해 전래동화 혹은 교훈이 담긴 창작동화를 들려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소품이나 의상까지도 신경 쓴다.
박혜년 '북북' 봉사단 대표(67)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 마음을 더 밝게 해줄까 고민을 하게 된다"면서 "지난해 효자동·삼천동에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를 적고 그림까지 그려 직접 제작한 동화책을 들려줬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들 역시 '동화 할머니 언제 와요?'라며 일주일을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 아이들이 어른과 함께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효자문화의집은 올해 삼천 생태를 지키기 위한 생태문화봉사단도 조직했다. 참여 의사를 밝힌 어르신들은 대개 퇴직한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대다수.
"아직 건강한데 막상 할 일은 없고. 집에만 있다 보니 절로 우울증이 왔어요. 경로당에서 노느니 이왕이면 재능 기부를 하고 싶어서 가까운 효자문화의집에 오게 됐지요. 여기 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형식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사전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혀를 내두를 만큼 짱짱하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이 하천에 관한 이해, 수질 평가법, 인근 하천 답사 등을 진행해 하천에 관한 상식을 익히도록 하는 방식. 삼천의 이해를 돕는 안내자부터 인근 아파트가 들어설 지역의 하천 오염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역할까지 폭넓게 소화할 예정. '북북' 봉사단에서 생태문화봉사단 활동까지 욕심을 낸 주세택(67)씨는 "처음엔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삼천 정화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한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십시일반의 지혜를 터득한 어르신들은 매주 너나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재능 기부를 참여하고 있다. 강현정 관장은 "'북북' 봉사단과 생태문화봉사단은 어르신들 도움 없이는 운영되기 힘든 모범 사례"라면서 "특히 노년층의 참여가 늘면서 문화의집이 다양한 세대가 함께 소통하는 공간으로 거듭난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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