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취향'반영하는 신사복 제작, 손님들사이 큰 인기 / "수제품 가치 인정해줘야, 젊은층도 기술 배우려 할 것"
55년째 수제 양복 제작 외길을 걸어온 장영문(70) 씨.
반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옷을 만들어 온 그는 옷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과 성품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자신만의 '옷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전주 평화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진학하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장 씨는 13세가 되던 해 인근 교회에서 운영하는 야학에서 한글과 수학을 깨쳤다.
이후 친척의 권유로 15세부터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성실함과 실력을 갖춘 기술자로 소문이 나면서 1973년 군산의 한 양복점으로부터 재단사 직을 권유받으며 군산과 인연을 맺었다.
고객의 취향을 우선시하는 그의 실력이 군산에 소문나면서 1981년 군산의 패션 1번지로 불리던 영동에 시온테라를 개업해 현재까지 32년째 운영하고 있다.
개업 후 10년 동안 해마다 300여벌의 양복을 제작하며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1990년대부터 기성복이 양복시장을 잠식해 가며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장 씨는 옷은 고객 각자의 체형과 취향에 맞아야 입는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수제 신사복 제작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최근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중시되고 있지만 오히려 옷 만큼은 표준형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재단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며 "세상에 단 하나 자신만을 위해 디자인 된 수제품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풍토가 조성돼야 젊은이들도 기술을 배우려 할 것입니다"고 안타까워 했다.
장 씨는 아무리 뛰어난 재주도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쌓아져야 비로소 기술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강조햇다.
견습생 시절 동료 중 한사람이 뛰어난 바느질 실력을 가지고도 게으름을 피우며 매번 손님들과 약속한 납품기일을 어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재주에 신뢰가 더해져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술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뛰어난 재주도 성실을 바탕으로 할 때 진정한 기술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낱 요령에 불과할 뿐입니다"고 말하는 장 씨는 양복 일 덕분에 다양한 지위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
또한 양복 만드는 기술이 있어 삼남매를 약사, 한의사, 학원장으로 어엿하게 성장시킬 수 있었음에 항상 감사하며 즐겁게 생활한다.
그래서인지 70세의 나이에도 현재까지 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모르고 살아왔으며, 시력도 1.2로 아지까지 손수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장영문 씨는 "옷은 사람을 감싸주고 보호하는 역할 뿐 아니라 인격과 인품을 보여주는 척도이고 옷과 사람의 균형미는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며 "고객을 위한 작품활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바늘과 실을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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