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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전주, 전주독립영화관

▲ 김 선 희 우진문화재단 운영실장

지금 우진문화공간 '비밀의 정원'은 달콤하고 새콤한 금목서 향이 진동하고 있다. 물푸레나무과의 상록수인 금목서는 큼지막한 몸피에 비해 새의 혀만큼이나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워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해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어 추석 무렵이면 꽃대에서 잘디잔 망울이 맺혀 십자모양의 노란꽃이 피어나 일주일 가량 지속된다. 정원의 벤치에 앉아 등을 세우고 턱을 약간 들어 눈을 감고 있으면 금목서 향이 코끝을 스쳐 온몸을 휘감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와 어울려 지난 여름 더위와 태풍에 시달린 심신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의자는 힐링벤치가 되고 비밀의 정원은 그대로 힐링가든이 된다.

 

슬로우시티를 지향하는 전주에는 이처럼 천천히 찾아보면 보배로운 곳이 많다. 그 중 이 가을에 한번쯤 왕림을 권하고 싶은 곳이 옛 보건소 자리에 있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다.

 

영화 '카모메식당'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전주독립영화관이다. 영화 속 대표적 힐링식당으로 꼽히는 카모메식당은 향긋한 계피향의 시나몬롤과 핸드드립커피라는 아이콘과 함께 정성과 안식을 파는 가게를 상징한다. 이 영화는 일본의 여성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작품인데 역시 전주독립영화관에서 그가 만든 '토일렛'과 '요시노이발관'을 만났고 배우 모타이 마사코가 이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영상으로 보여준 곳도 전주독립영화관이다. 마약과 범죄에 노출돼있던 거리의 아이들을 모아 음악을 가르치고 이들의 숨어있던 재능을 발굴하여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통해 발현시킨, 세계적인 음악 사회적기업의 롤 모델이 되었던 엘 시스테마 스토리는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시몬 볼리바르 유스 출신이 베를린필의 단원이 되고 역시 그 출신인 지휘자 구스타프 두다멜이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의 콜을 받는 이야기에 또 얼마나 가슴벅차했던지.

 

일체의 대사 없이 3시간 가까이 상영됐던 '위대한 침묵' 역시 전주독립영화관이 있었기에 볼 수 있었다. 알프스 깊은 산중에 있는 묵언수행 수도원의 일상을 영상으로 접하며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가 '잡소리'일 수 있다는 반성을 하였다. 전주독립영화관은 이처럼 영혼의 안식을 주는 영화 외에도 젊은 감독들의 실험적인 영화와 상업 영화관이 틀기 거부하는 비대중적 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일반극장에서 보기 힘든 귀한 영화를 '흔한 영화'보다 더 저렴하게 볼 수 있고 회원에 가입하면 값을 더 깎아주고 매달 소식지도 보내준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막 시작됐던 2000년 즈음 전주에도 멀티플렉스 파동이 밀어닥쳤다. 시당국은 1극장 1상영관이라는 오랜 체제를 유지해온 극장주들을 설득하여 시설 개선을 시키고 시민들에게는 상영관이 많아지면 더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블랙버스터영화는 거의 모든 상영관을 장악하여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고 자본과 마케팅이 취약한 영화는 극장에 걸리지도 못하는 현실이 됐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조작하는 손'에 의해 무력해졌다. 전주독립영화관은 이러한 영화시장 구조에서 희생되는 영화와 관객을 위한 보루로서의 존재감을 갖는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않았다면 전주에서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극장은 바로 전주독립영화관이었을 것이다. 10월에는 또 어떠한 영화의 성찬이 차려질까 하는 기대감, 전주시민의 이 특권이 오래 지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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