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따뜻…에너지 절약도 효과
하루가 다르게 일교차가 커지고 있다. 아침 출근에는 코트가 필요하고 점심에는 반팔이 필요하니 옷 입을 때마다 난감하다. 결국에는 지난 추석에 선불 받았던 반팔 길이의 내복을 찾아 꺼내 입었다. 아직 두꺼운 옷을 외투로 입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으니까.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내복 준비해 나서야 할 때다. 실내 활동이 많은 만큼 반팔이나 8부 소매 길이의 내복들도 준비 돼 있으니 셔츠 안에 가볍게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복에 대한 20~30대의 기억은 어린 시절 엄마의 극성맞은 내복 성화로 눈물 콧물 짜던 것이 다 일지 모른다. 답답했고 안 예뻤지만 날씨가 쌀쌀해진다 싶으면 언제나 등장했던 아이템. 물론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내복은 옷장에서도 사라졌다.
내복이 다시 나타난 것은 '더 이상 젊지만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다. 가볍고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잔소리 없이도 애용품이 된다. 일단 입어보면 사랑하게 되지만 아직도 '패션'과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시절 '빨간 내복'으로 대변되는 내복의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내복(內服)은 겉옷 안에 입는 속옷의 총칭이지만 우리가 부르는 것은 보온성을 위해 안에 입는 옷이다. 1950년대 후반 신식 내복의 형태가 나타났는데 이후 1962년 신앙촌이라는 회사에서 '빨간 내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아크릴 섬유로 만든 제품이었는데 이 물건이 빨간색이었던 것. 이후 시간이 흘러 1984년에는 갑자년(甲子年)을 맞아 딸이 부모에게 빨간 내복을 사드리면 60년 이후까지 부모가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슬프게도 이 당시의 빨간 내복은 염색 기술의 부족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나일론이라는 소재가 낯설었던 시절, 제대로 염색하는 기술 또한 적었던 것. 그나마 붉은색 염료가 나일론과 흡착성이 좋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빨간 내복'의 큰 유행에 대해 시간이 흘러 이유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붉은색의 따뜻한 느낌 때문이라는 설과 액운을 막는 색이라는 설이 주장됐었다. 물론 이 이유들은 그저 설일 뿐, 진짜 과학과 신앙의 결합을 염두하고 염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빨간 내복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기 전 그 기원을 찾아보면 게르만족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게르만족의 대 이동이 있던 4세기 시절로 유추하고 있는 것. 게르만 족 사이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입었다는 설로 그 형태는 위 아래로 나눠진 투피스 형으로 튜닉(tunic)이라 불렸다. 현재와 같은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세계 1차 대전 이후로 모든 것이 실용화 되고 여성들도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기능에 치중한 내복이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내복으로 추정되는 옷이 있다. 삼국사기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내의' 혹은 '내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속옷이 등장한다. 여성들의 경우 많게는 아홉 가지 이상의 속옷을 입었던 터라 하체를 위한 내복은 필요 없었을지 모르지만 남성들은 고려시대부터 속바지를 착용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내복의 역사도 벌써 1000년이다.
요즘처럼 난방시설이 잘 돼 있는 시절에는 내복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 여름, 전력난으로 인해 실내 온도를 제한하는 정책을 썼던 것처럼 겨울철 난방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1000년 이상을 이어온 역사를 잇는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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