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 출신의 원로 소설가 홍석영씨(82)는 삶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소설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뇌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왜 태어났느냐'고 자신은 물론, 외롭게 자라는 풀 한 포기에게까지 묻는다. 그의 문학을 지탱하는 힘은 바로'외로움'이었다. 4세때 어머니를, 8세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실제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천형처럼 앓고 살았다.
전주문화재단이 지난 25일 저녁 완판본문화관에 마련한 '전주 백인의 자화상'에 초대된 노 작가는 8순의 나이에도 제자와 가족, 문인 등 30여명의 지인들 앞에서 정연한 논리와 숫자 하나까지 기억하는 총기를 과시했다. 문학평론가 호병탁씨 사회로 진행된 이 자리에는 소설가 박범신씨를 비롯, 소재호·정군수·강상기·장재훈 시인, 화가인 이승호·박미서씨 등이 참석했다. 수필가 선산곡씨가 창으로 분위기를 돋웠다.
그의 문학 인생은 본명인 홍대표(洪大杓) 대신 석영(石影)이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갖게 된 이야기로 시작됐다. '몸집은 작은 데 왜 이름은 크냐'는 등 놀림을 많이 받아 등단때 이름을 바꿨다. 월북 작가인 임화 시인의 '현해탄'를 읽으며 피가 끓었으며, 피끓는 마음을 놓아둔 채 돌은 될 수 없어 돌의 그림자가 되고자 '돌 그림자'(석영)로 자신이 작명했단다.
신석정·박용래·천상병 시인과 허세욱 박사와의 일화들이 그의 입을 통해 술술 풀어졌다. 특히 석정과는 사제관계가 아님에도 가까이 있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 석정 선생이 전주상고 교사로 재직하던 어느날, 문단생활 40년만에 처음 인정을 받았다고 그래요. '당시 전주남중 2학년 학생이 선생에게 시를 잘 쓴다던데 시 한 번 봅시다'고 당돌하게 말하더란 거예요. 선생이 시를 보여줬더니 학생이 하는 말,'아닌 게 아니라 잘 쓰네'그러더라나요. 소탈하고 인간적이었던 석정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일화입니다."
정렬·이광웅 시인 등 좋은 작가들이 너무 일찍 세상을 뜬 것과, 이철균·박봉우 시인 등의 말년 불우한 삶에 가슴이 아팠다고 추억했다.
"일제시대 전북 출신 작가들의 문학은 있었지만, 전북에서의 문학활동은 거의 없었습니다. 해방후 석정 선생이 태백신문 편집위원으로 오면서 전북문단이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후 백양촌 신근 선생이 전북신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두 분이 전북문단의 중심 축이 됐습니다"
소재호 전 전북문인협회장은 "선생님은 전북문단의 지평을 연 1세대다"며, "고매하고 고결한 인품과, 제자가 담배를 피워도 용납할 만큼 훈훈한 마음을 가지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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