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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백양촌 (白楊村)편 - 전북 문단의 초석 닦은 순백의 시인

▲ 백양촌 시인

눈길에서 널 그린다.

 

꽃가루 흩뿌리듯 희게 날리는

 

네 안 같이 깨끗한 눈송일 이고

 

아스라이 꿈처럼 다함없는 길

 

이리도 다사로움 내 안을 에워쌈은

 

네 고운 숨결 희게 무늬져

 

목마른 내 영(靈)을 적셔줌인가.

 

그렇듯 사랑으로 우러르던 큰 뜻

 

버린 채 외롭게 이방에 떠돌아도

 

네 다냥한 얼굴 빈 가슴에 포근히 퍼지는

 

이 길은 어느 순한 고향길인가.

 

눈길에서 맺히도록 널 그린다

 

고독한 시인의 퇴색한 외투에

 

고이 얹히는 하얀 손길이여.

 

눈은 내려 내려 황홀한 사연

 

-「눈길에서」 전문

 

전북 부안에서 출생한 백양촌(白楊村:1916-2003)의 본명은 신근(辛槿)이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일(渡日)하여 중학교와 대학을 수료하였다. 광복이 되자 1945년 전주사범학교 교사로 첫 부임하였다. 이후 전라신보사 편집 부국장('47), 삼례중학교 교사('49) 전북일보 상임 편집고문 겸 논설위원('50), 전주고등학교('53), 김제농고('59), 전주성심여고 교사('59-'80)로 근무하면서 평생을 언론과 후학양성에 힘을 쏟았다.

 

1946년 5월 『월간 예술』지에 시 「동방의 새아침」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하는 가운데, 도내의 각 신문에 시, 동요, 평론 등을 발표하면서 전북문단의 초석을 닦는데 앞장섰다. 1962년 문협 전북지부장, 예총 전북지부장('66-'67년)을 지내며 전북문화상 문학부문('66년)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목마른 내 영혼'을 곱고 영롱하게 적시고 있는 '깨끗한 눈송이', 이는 순백의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절대지향의 순결의 세계다. 이러한 그의 '순결주의'는 다른 시, '내 마음 아실 이 어데던 한 분 쯤 계실 법 하건만'(「求心」)과, '내 마음 언제나 하늘 가에 떠도네'(「봄」)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처럼 초기부터 그의 시에서는 분명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다른 그 어떤 정신적 이데아에 대한 추구가 아니었든가 한다. 이러한 이데아 지향의 순결성은 또한 그만큼 현실과의 갭(gap)을 좁히지 못한데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을 유발하는 그의 시적 정조(情操)가 되기도 한다.

 

여기 서면

 

태고의 숨결이 강심에 흐려

 

어머니, 당신의 젖줄인양 정겹습니다.

 

푸른 설화가 물무늬로 천년을 누벼 오는데

 

기슭마다 아롱지는 옛 님의 가락

 

달빛 안고 하얀 눈물로 가슴 벅차옵니다

 

목숨이야 어디 놓인들 끊이랴마는

 

긴 세월 부여안고 넋으로 밝혀 온 말간 강심

 

어머니, 당신의 주름인양 거룩하외다

 

길어 올리면 신화도 고여 올 것 같은

 

잔물결마다 비늘지는 옛 님의 고운 가락

 

구슬로 고여옵니다.

 

-「강」 전문

 

퍽 곱고 여린 여성적 화법의 이 시는 2003년 11월 전주 덕진 공원에 새겨져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을 순화하여 가는 지순하고도 아름다운 작업'이라는 평소 그의 지론처럼, 이 시와 더불어 선생의 곱고 말간 시의 강심(江心)은 오래토록 우리 곁에 여울져 흐르리라고 본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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