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이 말로 태어나 겪는 기이한 이야기, 그 안에 소통을 가로막는 기이한 언어 담론 놀이가 펼쳐진다. 말도 아닌 것이 노새도 아닌 것도 그렇다고 개보다 약간 큰 암컷 말로 태어난 자, 그런데 그 동물이 기이한 사연들을 인간의 언어로 쏟아낸다. 주변의 반응은 놀랍다. 그러나 통치 질서를 어지럽힌 죄목으로 사형 혹은 추방형이라니, 말 주인 창대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겨우 금언령이 내려진다.
"히히히잉 부르르르", "히히히잉 부르르르", 인간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동물로 되돌아가야 한다. 말 고유의 모습으로의 길들이기, 그런데 극존칭을 요구하는 황당함이 벌어진다. '주인님 제발 간청하오니 인간의 말을 버리시고 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말 고유의 언어를 써주세요'. 말 '미중'의 황당한 요구, 터트림의 정서와 억제의 정서, 곱게 키우고 사랑했기에 자존심을 구기며 맘에도 없는 존칭 언어로 대해야 하는 아이러니, 여기에 미묘한 비틀림 정서가 버무려지면서 진한 능청 놀이의 맛이 우러나온다. 안세형의 농밀한 육체 언어가 관객을 놀이 우화의 아우라 안으로 자연스레 이끌어 들인다.
어둡고 칙칙한 복색에 머리 위에 안경을 걸쳐 쓴 마을 사람들(김영주 외), 동일 복제 이미지로의 반복 컨셉은 획일 문화에 길들여진 자들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다. 기이한 것을 찾으러 온 어사(홍지예)의 등장으로 뜻밖의 반전이 시작된다. 미중에게 말을 금했던 자들이 거꾸로 애원하는 자가 된다. 동물의 마음을 달래려는 자들(정경림 외), 좌정하고 앉아 있는 동물에게 읍소하며 술을 빚어 갖다 바친다. 극은 게임이요 전략이다. 획일 독재를 해왔던 마을 장로들(염정숙 외)이 동물에 의해 농락되어가는 장면은 이 우화 놀이극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동물 미중에게 애걸해하며 비굴해 하는 자들(최균 외), 이들을 제압해 나가는 동물, 개인과 집단의 반전 놀이극 구도, 이를 창의적으로 소화해낸 류경호의 연출 컨셉은 조롱 정서와 사유 쾌감을 동시에 유발시켜 낸다. 극 해설자 '연암'에서 말 '미중' 역할로 변신하는 과정, 어슬렁어슬렁 인생 담론을 펼쳐가며 또 다른 미지의 곳을 향해 사라지는 연암의 유유자적함, 이를 비유적으로 조망케 한 서형화의 농익은 게스투스 배우술은 무대 전후좌우 빈 공간을 충분히 제압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더욱 진한 서사 놀이 맛깔을 유도해 낸다.
청년들의 집단 정사와 재치 있는 상징 놀이 컨셉, 창대의 사설 타령 언어와 마을 사람들의 화답 코러스가 신선미와 역동성을 유발하지만 공연 중후반부는 템포와 속도와 이미지 창출 측면에서 변별성이 약화된다. 술집작부 이미지의 어사, 그의 괴이한 놀이 언행, 비 본질에 종속된 자들의 우화 행진 그림들, 이를 예측 불허의 상징 퍼포먼스로 펼쳐 놓았다면 더욱 풍성한 놀이 우화 묘미가 우러나왔을 것이다.
/김길수
(연극평론가·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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