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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오페라단 ‘투란도트’ "예향 전북 문화 역량 보여줘"

동·서양 아우른 환상적 연출력

흔히들 유럽의 수준 높은 문화국가들은 '오케스트라'를 한 도시의 문화를 가름하는 상징으로 본다. 그러나 사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오페라다. 종합예술인 오페라 수준을 보면 한 눈에 파악되기 때문이다. 어떤 오페라하우스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간의 경쟁이고 관광객들이 오페라로 몰려다닌다. 때문에 오페라로 세계 도시로 부상하려는 경쟁 또한 치열하다. 그럴 만큼 오페라가 문화 자존심의 상징 코드가 되어 있다.

 

아시다시피 내년 2013년은 오페라계 두 거장 베르디, 바그너 작곡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지난해 벌써 바그너를 선점하기 위해 도밍고가 미국 LA 오페라 감독으로서 바그너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추진 과정에서 예산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예술감독은 시에 지불 보증을 요청했고 시장은 수락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뉴스를 접한 시민들과 부호들이 자존심이 상한다며 후원금을 내어 지불 보증서를 휴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또 이탈리아가 유럽 한파의 재정위기로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예산이 삭감되어 약 900만 달러 적자를 입었고 이로써 오페라 시즌 개막이 불투명해지자 이탈리아 기업 Tod's가 520만 유로(약 77억)을 단번에 내놓았다 하니 우리로서는 그저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이 지난 주말 올린 푸치니의 '투란도트'(16일~18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는 의미 있는 획을 그은 사건이다. 사실 국내 형편에선 '투란도트'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문화 역량을 시험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런 작품을 올린 도시가 몇 안됐던 것은 많은 예산, 극장 여건, 관객 수준 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이탈리아 정상급 성악가들이 우리네 1급 캐스트와 함께 무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호남오페라단이 중앙에서도 관심을 끄는 단체로 부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 오페라를 주도해온 김자경오페라단과 故 김봉임 단장의 서울오페라단이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즈음 지역에서 태동한 호남오페라단이 오페라계 1위의 경력 단체로 자리매김 했기에 그 리더십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호남오페라단은 국내 창작 오페라 콘텐츠 보유 1위란 점에서도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점쳐지는 단체다.

 

'2012 전북 방문의 해'를 맞아 기획된 '투란도트'는 전북 도민의 오페라 안목을 한 차원 높였다. 이탈리아 연출가 마르코 푸치 카테나(marco pucci catena)가 동·서양을 결합시킨 환상적인 연출력을 보여주었으며, 투란도트 역의 크리스티나 피페르노(Cristin a Piperno)와 호남오페라단 단원인 고은영, 칼라프 역의 리하르트 바우어 (Richard Bauer)와 이정원이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청중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일구의 정확한 지휘는 오페라 전체를 안정감 있게 이끌었고, 전주시립교향악단·시립합창단, 널마루 무용단, 전북연극협회의 참여로 완성도를 높여 주었으며,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도시는 오페라와의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웅장한 오페라가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질 때 한 관객은 호남오페라단의 '투란도트'가 예향 전북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는 중앙 무대에서도 쉽사리 시도할 수 없는 뛰어난 공연이었다는 것을 방증했다. /탁계석 (음악평론가)

 

 

※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가곡을 위한 작사와 오페라 대본을 써왔으며,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으로서 한국음악상 특별상과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비평 부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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