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순서ㆍ좌석 뽑기로 결정..모두발언부터 신경전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21일 처음이자 마지막 TV토론을 한 현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국민들이 후보들을 한자리에서 검증할 유일한 시간이자, 향후 여론조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단 100분의 시간에 두 후보와 캠프 관계자들은 사활을 거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11시15분부터 100분간 TV토론이 열린 곳은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 지난 6일 두 후보가 최초로 단독회동을 했던 장소다.
토론에 앞서 양 캠프 관계자가 미리 와서 두 후보의 모두ㆍ마무리발언 순서를 `뽑기'로 정했다. 문 후보 측이 당첨돼 모두ㆍ마무리발언을 먼저 하게 됐다. 자리 선택권을 갖게 된 안 후보 측은 왼쪽, 오른쪽 중 오른쪽 자리를 선택했다.
토론 시작 30여분 전, 이날의 주인공들이 도착했다.
10시43분, 문 후보가 먼저 왔다. 지지자 50여명이 "문재인"을 연호하며 응원했다. 그는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어 위로 들어올렸고, 사방에 손인사를 하기도 했다. 기자들이 토론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토론을) 직접 보시지요"라고 짧게 말했다.
곧이어 10시45분, 안 후보가 도착했다. 지지자들은 "국민후보" "진심"을 외치며 힘을 불어넣었고, 안 후보는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을 위로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는 토론에 임하는 각오에 대해 "평소 생각대로 진심으로…(하겠다)"고 밝혔다.
두 후보는 10여분간 대기실에 머무르다가 토론 시작 15분을 앞둔 11시께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스튜디오 왼쪽에 문 후보가, 2m 가량 떨어진 오른쪽에 안 후보가 착석했다. 두 후보 사이에는 `2012 후보단일화토론'이라고 쓰인 타원형 판이 놓였다. 두 후보를 마주 보는 자리에 사회자가 앉았다.
두 후보 모두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최대한 격식을 갖췄다. 문 후보는 짙은 자줏빛 바탕에 사선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안 후보는 밝은 자줏빛 단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사회자가 두 후보에게 카메라 시선 처리, 발언시간 엄수 등에 대해 사전 안내를 하며 리허설을 했다.
이 과정에서 두 후보는 간단한 대화도 주고받았다. 안 후보는 "(민주당) 경선 때는 5명하고 같이 하지 않았나"라고 물었고 문 후보는 "그때는 카메라 보기 참 곤란했다"고 했다.
안 후보는 "그때(단독회동 때) 만났던 그 장소인 것 같은데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했고 문 후보는 "그때 그 장소냐?"고 되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토론 시작 직전, 문 후보는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고, 안 후보는 물을 몇차례 마시며 긴장감을 풀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11시15분. 토론이 시작됐다. 사회자가 곧장 "룰 협상 타결 안됐죠"라고 두 후보에게 물었고 문, 안 후보는 모두 "네"라고 답했다. 이어 "내일 두 분 만나나"라는 질문에 문 후보는 "다방면으로 노력해야죠"라고 했고 안 후보는 즉답하지 않았다.
문 후보는 모두발언에서 "후보단일화 방안부터 먼저 마련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국정은 좋은 뜻과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메커니즘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안 후보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자신의 국정운영 경험을 부각시키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문 후보는 또한 "안 후보가 새정치 바람을 불어줬지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저라고 생각한다"며 각을 세웠다.
안 후보는 다음날 시내버스 총파업이 시작되는 사실을 언급하며 "정치가 제 몫을 해야 시민들이 평안하다"고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대선 출마 후 두 달 동안 많은 시민을 만난 경험을 이야기하며 진도의 한 노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직접 꺼내 내용 일부를 읽기도 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제 손을 꼭 잡고 바꿔달라고 한다"며 "어려운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 위로가 되는 정치, 상식이 통하는 정치가 제가 하고 싶은 새로운 정치"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주도권 토론과 자유토론에서 두 후보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문 후보 측은 토론에서 때로 언성을 높이거나 공격적 질문을 던지며 안 후보와 각을 세웠고, 안 후보는 공손한 경어체 어조를 유지하며 문 후보에 대한 비판 수위를 조절했다.
특히 문 후보가 안 후보의 구체적 공약에 대해 직접적으로 많은 질문을 던졌다면, 안 후보는 특정 사안에 대해 자기 입장을 먼저 설명한 뒤 문 후보의 의견을 묻는 방식을 주로 썼다.
안 후보가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약속으로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이 된 걸로 보나"라고 묻자 문 후보는 "분명히 약속한 걸로 이해한다"며 "지금 안 후보가 말한 건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안 후보는 문 후보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에 있던 시절 법인세 인하 결정과 관련해 "참여정부의 집권 엘리트와 경제관료, 삼성그룹의 결합이 이뤄져 개혁 과제가 늦춰졌다. 같은 인력풀에서 경제민주화가 잘 이뤄질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문 후보는 "참여정부 한계였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그때는 시대적 과제 자체가 정치적 민주주의였다. 당시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면 좌파라는 소리를 들을 때였다"고 답했다.
사회자가 `상대 후보를 칭찬해보라'는 요청에 문 후보는 "안 후보가 우리 정치를 크게 크게 변화시켰다"면서도 "안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의지나 진심은 믿지만 그게 협상팀에서는 잘 반영이 안 돼 승부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반면 안 후보는 "(문 후보의) 청년 일자리 공약이 좋았다"며 "단일후보가 되면 청년고용의무할당제, 고용분담금 정책을 적극 수용하고 싶다"고 했다.
두 후보는 자세, 제스처, 어투 등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민주당 경선을 거치며 토론에 단련된 편인 문 후보는 여유가 느껴졌고, 토론 경험이 거의 없는 안 후보는 다소 경직된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문 후보는 질문하거나 답변을 들을 때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여 적극적인 모습으로 보인 반면, 안 후보는 토론 내내 정자세로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문 후보가 두 손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큰 제스처를 취했다면, 안 후보는 두 손을 책상에 둔 채 원고를 살짝 넘기는 것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시선처리에서 안 후보는 책상 위 서류를 자주 바라보고 문 후보와 눈을 자주 마주치지 않아 긴장한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문 후보는 시선처리에서도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한편 안 후보는 토론 중에 지지자로부터 받은 편지나 문 후보와 합의한 `새정치공동선언문' 서류를 직접 꺼내 읽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마무리발언에서 두 후보는 자신이 왜 단일후보가 돼야 하는지 호소했다.
문 후보는 "저는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고 안 후보는 미래 세력을 대표한다"며 "두 세력이 힘 합칠 때 어느 세력이 중심이 돼 외연을 넓히며 다른 세력을 품는 게 순리적인지 판단해달라"며 `민주당 중심의 단일화'를 강조했다.
안 후보는 "반드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기고 대선에 승리해 민생을 보살피는 새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본선 경쟁력'을 강조하며 "여러분이 기적을 함께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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