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다산과 추사가 강진의 선비 황상의 집을 방문했다. 황상은 다산에게 글을 배운 처지였다. 가난한 황상의 처는 급히 아욱을 뜯어 국을 끓이고 쌀이 없어 조로 거친 밥을 지어 손님을 대접했다. 빈한하지만 정갈한 밥상을 받고 다산은 "남쪽밭에 이슬 젖은 아욱을 꺾고 동쪽 골짜기의 누른 조를 밤에 찧는다."는 시를 지었고 추사는 이 시에서 '이슬 젖은 아욱과 노란 조'를 길러내 '노규황량사(社)'라는 제액을 써주었다. 이후 이 제액은 남쪽 지방 선비들 사이에 가난하되 고귀한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어쩌면 '노규황량'은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싶은 이들의 자존감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강요된 가난은 차이가 크다. 강요된 가난에는 자괴감이 있을 뿐이다. 전주시 민간위탁 문화시설이 어느새 설립 10년을 맞았다. 그 세월은 한옥마을 변천의 시간과 같다. 10년 사이 한옥마을의 땅값은 치솟고 관광객이 넘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문화일꾼들의 가난이다. 일이 좋아 가난을 선택했고 나름 보람도 있지만 오랜시간 희생이 강요되면서 문화일꾼들의 누적된 피로감이 상당하다.
10년전 한옥마을은 근대한옥의 집결지라는 건축사적 의미는 있지만 가난하고 보잘것없어 누구나 떠나고 싶어하던 곳이었다. 전통문화관과 공예품전시관, 한옥생활체험관, 술박물관은 한옥마을 활성화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2002년 설립됐다. 역사박물관은 효자동으로 자리잡았고 최명희문학관의 출발은 몇년 뒤의 일이다. 전주시는 문화시설을 신축하고 공무원을 파견하는 대신 시설의 운영을 전문성과 열의를 갖춘 민간에 위탁했다. 지금은 거버넌스라는 말이 흔해졌지만 당시 시립시설의 민간위탁은 전국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민간의 열정은 인정하지만 역량은 검증되기 전이었다. 위수탁기간은 3년, 위탁금과 운영협약을 놓고 전주시는 갑, 민간단체는 을의 관계에 놓였다. 3년간 열심히 해 성과를 내지 않으면 위탁자는 바뀔 수 있다. 이런 긴장감은 일의 강도를 높이고 창의성을 끌어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10년을 맞은 민간위탁 문화시설은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시에서 직접 운영했다면 훨씬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10년전의 우려를 씻고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곳이다. 그 중심에는 시립 민간위탁 문화시설 활동가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립 문화시설들은 공공성과 자립화라는 대립하는 두 개의 과제를 안고 줄타기해왔다. 위탁금을 줄이고 자립도를 높이려면 수익을 내야하는데 공공성이 중시되는 시립시설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내핍은 필수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급여와 복지는 늘 양해대상이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지역 문화계의 저임금구조를 고착화하는데 시립시설들이 앞장서온 셈이다. 이제 전주시는 민간위탁 10년의 피로감을 맞은 시립 문화시설들의 고용의 질을 높이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화일꾼도 부양할 가족이 있고 노후를 준비해야하는 생활인들이다. 적어도 시립시설의 직원들이 자기 급여를 부끄러워할 정도는 면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일하고 적정한 대우를 받을 때, 경력 쌓고 거쳐 가는 직장이 아닌 누구나 지원하고 싶은 일터가 된다. 전주시 민간위탁 문화시설의 질적 성장은 구성원의 자기 존재감이 확고할 때 자발성과 창의성의 발현으로 달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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